누군가의 삶이 부러운 당신에게

"일연이 묻고 OO이 답하다."

by 일연

잘 지내고 계세요?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른 편지를 보내요. 한 달에 한 번, "일연이 묻고 OO이 답하다."라는 글을 보냅니다.

주위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붙잡아두고 싶을 만큼 좋은 대화가 있는데 그 순간이 기억 속에서 흩어져 버리는 게 늘 아쉽더라고요. 이걸 저는 "빛나는 대화"라고 불러요. 이 빛나는 대화를 한 날이면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그날의 대화를 꼭 적어놓곤 해요. 그러다 문득, 이 빛나는 대화를 혼자만 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저와 누군가가 나눈 대화를 기록으로 적어보기로 했어요.


오늘은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 레나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레나는 영어스터디에서 원어민 선생님으로 저는 수강생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어요. 연애 고민이나 진로 고민까지 서로의 고민을 안고 만나면 서로에게 가장 좋은 상담가이자 치료자이자 친구가 되어 준답니다.


3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동네의 자그마한 카페에서 마주 앉아 나눈 빛나는 대화를 기록으로 전합니다.



[일연이 묻고, 레나가 답하다]


일연: 레나, 최근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했잖아? 정말 놀랐어. 피드도 열심히 꾸미고 릴스까지 누구보다 공들여서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어? 그리고 비활성화한 이후의 삶은 어때?


레나: 내 친구가 알려준 문장이 있어. “우리에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는 바로 나 자신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성취를 하고도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평가하면서 불안감을 느끼잖아. 이게 가면증후군이래.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조차 타인과 비교를 하면서 그 성취가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거야. 나는 이게 SNS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해.


실제로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한 지 이제 두 달이 되었어. 그런데 놀랍게도 다시 활성화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 않아. 정말 자유롭고, 뭐랄까 해방감이 들어.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 한 이유는.. 사실 어떤 계기가 있었어. 내 삶에서 뭔가 계속 잘 안 된다고 느껴지고 바닥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많이 우울했는데 친한 친구가 자신에게 있었던 좋은 일을 올린 게시물을 봤어. 그 친구한테는 그게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내 삶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 나는 마케팅 분야에서 오래 소셜미디어 관련 일을 했으니까, 소셜미디어에 대해 잘 알아.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올린다는 것도 알고 그게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누구보다 잘 알아. 그럼에도 흔들리더라. SNS에서는 모든 것이 아주 정교하게 편집되어 있잖아.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을 볼 때 우리들은 '아, 다들 나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야. 이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자극을 받았어. 그 순간 '아 이제 충분해. 이게 내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 휴식이 필요해.'라고 생각했어.


SNS를 떠나보낸 건 내 삶에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 예를 들어 페스티벌에 가거나 여행을 갔을 때, 머릿속에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아 빨리 예쁜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려서 사람들이 보게 자랑하고 싶다.'였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게 되었지. 그러다 문득 깨달은 거야. 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지? 내가 행복하면 그게 전부인데 말이야.


이제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 삶과 목표에 더 집중하고 있어. SNS를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걸 계속 보는 게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거든. 내 성취를 계속 작아 보이게 만들었어. 그런데 이제 그런 콘텐츠를 보지 않으니 시야가 훨씬 더 선명해졌어.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한 건 나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야. 내가 목표로 한 대학원 입학 준비나 건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거든. 운동도 거르지 않고 매일 헬스장에 가고 있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는지 깨달았어.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나를 올릴 때에도 완벽한 캡션을 쓰려고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었거든. 이제 자유시간이 훨씬 많아져서 그 시간을 나한테 투자하고 있어. 책도 읽고 헬스장도 가고. 아! 그리고 SNS를 삭제한 건 친구 관계를 정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어. 친한 친구들은 어떻게든 너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을 거야.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어.


일연: 내가 레나에게 연애상담을 할 때 레나가 종종 들려주는 “Universe theory”에 대해 이야기해 줘.


레나: 내 우주 이론의 핵심은 “Trust the universe.” 그리고 “Don’t overthink on everything”이야. 간단해. 예를 들어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 지원을 했던 것도 그렇게 깊게 생각한 건 아니었어. 그 학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캠퍼스 사진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거야. 그걸 보고 캠퍼스가 정말 예쁘네. 이 대학교에 지원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 그게 다야. 내가 다른 대학에 지원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대학에 가게 되었고 지금 내 삶에 꽤 만족하고 있어.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믿어. 그러니 모든 것을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연애에 나의 우주이론을 적용해 보면, 이별을 겪었을 때, 이 사람과 잘 안 되었다면 나에게 더 좋은 사람이 오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이게 우주가 그 사람을 놓아주라고 가르쳐주는 방식이라고 믿거든. 만약 네가 우주의 그런 사인을 받아들이고 “이 사람은 나에게 좋지 않아. 놓아줘야 해.”라고 깨달을 만큼 강해진다면 우주는 너에게 더 좋은 것으로 보답할 거야. 나와 딱 맞는 사람을 만나면 왜 이전 연인들과 결국 헤어졌는지 깨닫게 된대. 지금 “나의 인연”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구나라고 상상해 봐. 걱정을 하는 대신에 어딘가에 있을 너의 인연에게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는 건 어때?



[레나가 묻고, 일연이 답하다]


레나: 언니 책 많이 읽잖아. 최근에 읽은 책에서 얻은 가장 기억에 남는 지식이나 지혜는 뭐야?


일연: 에리히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어. <사랑의 기술>에서 프롬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받는 것'이나 '적당한 대상을 찾는 것'에만 집중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해. 내가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인데 나는 그동안 항상 사랑을 받고 싶어 했더라고. 고민도 늘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할까였어. 그러다 문득 '내가 사랑을 잘 주는 사람일까?' 생각하기 시작했어. 내 안에 사랑이 있어야 이 사랑을 잘 흘려보낼 수 있을 텐데. 문득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더라고. 그래서 요즘에는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열심히 듣고 있어. 더 귀 기울여서 듣고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쏟는 것. 그리고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바라봐 주는 것. 이런 연습을 하고 있어.


레나: 언니가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을 통해서 얻은 가장 가치 있는 교훈은 뭐야?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 중에 말이야.


일연: 사실 내가 얻은 교훈들은 다 경험에서 얻었고 책에서 얻은 건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 경험을 한 후에 책을 읽으면서 '아 맞아 그랬지!'라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었지. 분명히 책을 읽으면서 “와 너무 좋은 생각이다.”라고 밑줄을 아무리 그어 놓아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고. 그 실수를 두 번, 세 번 반복하고 그때마다 소름 돋게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걸 또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나면 그제야 조금 바뀌더라.


거창한 교훈은 아니지만 요즘에 자주 생각하는 건, ‘화가 날 수는 있어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화가 나는 나 자신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을 때에도 “제가 왜 자꾸 화가 나죠?”라고 물었지. 상담선생님님이 “왜 화가 나면 안 돼요?”라고 되물었을 때 깨달은 건 나는 내 감정을 인정할 줄을 몰랐다는 거야. 그저 사람들에게 온화하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만 많았더라고. 지금은 화가 나면 일단 인정해 줘. 아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화를 밖으로 내는 건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화를 내야 할 때인지 아닌지 한숨 고르면서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고 있어.


그리고 또 자주 생각하는 건 ‘내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야.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누가 나를 치고 가거나 길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났고 화를 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화를 내고 나면 그 안 좋은 기운에 나에게 더 오래 남는 거야. 그래서 한 번 흘려보내 봤어. 화를 내는 건 누가 나에게 던진 쓰레기를 내가 꽉 움켜쥐고 있는 것과 같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누가 나에게 쓰레기를 던지면 바로 버리거나 비켜가게 피하듯이 그냥 흘러가게 둬. 아 저 사람이 던진 부정적인 기운을 붙잡지 말자. 흘러가게 두자라고. 신기하게 그러고 나면 잠시 후에는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아 이 말도 반복하는데 효과가 좋아. “화 내봐야 내 손해다.”


아! 그리고 또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저 남자가 나를 좋아하나 안 좋아하나 헷갈리면 아닌 거다!”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SNS를 하는 데 참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잘 꾸며진 모습을 보이고 싶고,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자꾸만 알리고 싶었어요. 정확히는 알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기분, 나만 뒤처지면 손해를 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그런데 어느 날 퇴근을 하고 늦은 저녁 한참을 소파에 앉아 SNS를 보고 있는데 마음이 계속 무거워지는 거예요. '다들 참 행복하게 사는구나.'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분명 제 자신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만 멈춰있는 기분이었어요. 하루 종일 회사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예쁜 카페에 가고 한낮의 풍경을 즐기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자 제 자신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분명 꽤 괜찮은 하루를 보냈는데 그 순간 제 하루가 보잘것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순간 인스타그램 어플을 지우고 몇 주간 SNS에 접속하지 않은 채로 살아 보았어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제 삶에 더 집중하게 되는 거예요. 아 이게 나의 삶이구나.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가 아닌 외부에 시선을 두고 보냈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아직도 종종 다른 사람의 하이라이트와 저의 백스테이지를 비교하면서 움츠러들곤 해요. 그럴 때면 자꾸만 제 자신을 멀찍이에서 떨어져 보려고 노력해요. "봐, 너도 잘하고 있어. 충분해."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는 혹은 내가 되어보지 못한 나는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 거라고도 생각해 봐요. 그렇게 한참 말해주고 나면 조금 제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당신은 어떤가요?


꽃들이 피어나고 조금은 분주하게 봄이 찾아왔어요. 내일 아침에는 집을 나서보면서 여기저기 찾아온 봄에게 인사를 건네어보는 건 어때요? SNS 속에서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봄이 아닌 내가 만지고 보면서 맞이하는 봄에게 인사를 건네어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우리 어떠해도 괜찮은 지금을 살기로 해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일연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