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미안한 당신에게

by 일연

“와, 바다다.” 눈앞에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다. 저 멀찍이부터 들리던 쏴아 하는 소리와 코 끝에 저릿하게 느껴지는 은은한 내음으로 어드매 즈음에 바다가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다니. 감탄 섞인 탄식만 내뱉고 그대로 멈춰 서 버렸다. 아름답다. 좋다. 그러다 문득 마음 한구석에 돌덩이 하나가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좋은 것을 보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채 올라오기도 전에 갑자기 마음 한편이 무거워져 버리는 건 오랜 습관이다.


홀로 떠나온 제주 여행. 올레길을 따라 함덕해변을 걷는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노란 유채꽃이 가득 뒤덮은 서우봉이 보인다. 노란 유채꽃 너머로 보이는 쪽빛 바다 물결. 그리고 그 노란 유채꽃 사이사이에 사진을 찍어보려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오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다가 여지없이 한 무리에 눈길이 향한다. 예순이 넘어 보이는 여자 셋이 꽃보다 더 꽃 같은 색색의 옷을 차려입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연신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 모습을 보던 내 얼굴에는 흐뭇하던 미소가 이내 희미하게 흐려진다. ‘우리 엄마도 이런 거 보면 좋을 텐데.’ 기어코 제주에 여행을 떠나 와서 까지 이 생각을 해버리다니. 여행을 떠나온 내내 함께 오지 못한 엄마는 매 순간 곁에서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다를 반복했다.


환영을 잊어버리겠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서우봉을 내려와 다시 함덕해변으로 향한다. 부러 빠르게 걸어도 자꾸만 따라오는 엄마 또래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듣다가 이내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도 여행도 좀 다니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할머니는 하루 정도 이모가 좀 돌봐 주시면 되지 않겠느냐고, 아빠는 그래도 걸을 수 있는데 하루 세끼 정도는 혼자 차려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좀 다 놓고 딱 하루만이라도 좀 제발 집을 떠나보자고. 엄마를 달래다가 설득하다 이내 결코 말을 듣지 않을 그 소 힘줄보다 더 질긴 고집 앞에서 기어코 화를 내버렸다.


엄마는 20년 가까이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거기에 질 세라 8년 전에는 아빠마저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그렇게 엄마는 할머니와 아빠의 하루 세끼 밥상을 차리고 집안일을 돌보는 붙박이장 같은 요양사가 되어버렸다.


그놈의 밥. 결혼을 해본 적도 그래서 식구들의 하루 세끼를 차려본 적도 없지만 그럼에도 하루 세끼 밥이 지겹다. 아침 차리고 아침 치우고, 점심 차리고 점심 치우고, 저녁 차리고 저녁을 치우면 이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렇게 꼬박 하루 세끼의 밥상을 차리고 나르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그놈의 지겨운 밥. 밥. 밥이라면 신물이 난다. 밥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그 징글징글한 밥 좀 제 손으로 차려 먹으면 어디가 큰일 나나. 제발 좀 놓고 집 밖으로 나가자고 어르고 달래도 엄마는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라며 나를 달랜다.


“네가 좋으면 됐어. 엄마는 그걸로 충분해.”


“아, 쫌! 충분하기 뭐가 충분해! 됐어!” 못돼 처먹은 나는 기어코 제주 바다에서 엄마에게 전화로 성질을 내고야 말았다. 뭐가 충분하다는 건지. 지겨울 만큼 들었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부화가 치밀어 결국 성질을 부리고 만다. 나와 당신은 같지 않고, 나의 기쁨은 당신의 기쁨이 될 수 없는데, 어찌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건 거짓부렁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내뱉는 거짓부렁이라고. 이건 내가 끝내 진실을 알 수 없는 거짓말이거나 너무 늦어버린 후에야 깨닫게 될 마음이겠지.


엄마가 한 번만이라도 이기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나의 안위 따위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기를,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걸 가지고야 말겠다고 욕심을 부려보면 좋겠다고.


아무도 강요한 적 없는 무거운 마음을 나 홀로 끌어안고 함덕 해변을 걷는다. 귓가에 들리는 깔깔거리는 중년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자꾸만 거슬려 부러 걸음을 더 빨리 걸었다.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지 않을 때까지 서둘러 바쁘게 걸었건만 자꾸만 그 웃음소리는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꼬여있는 줄을 신경질적으로 급히 풀고는 가장 신나는 노래를 골라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데, 지잉-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좋은 거 많이 보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 이 밴댕아.”


핸드폰을 푹 주머니에 찔러 넣고 더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걷고 또 걸어도 마음의 추는 자꾸만 내가 여기 있다고 고개를 든다.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해서 미안했던 적이 있나요? 저는 종종 그래요. 좋은 걸 보고, 맛있는 걸 먹고, 행복하다고 느낄 때에면 이상하게 자꾸만 미안해져요. 이걸 나 혼자만 누리고 있다는 미안함. 엄마를 향한 이 미안함이 커져서 자꾸만 괜찮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화를 내보기도 하고 혼자 토라져 툴툴대기도 해요.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 이기적으로 자신의 몫을 챙겼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할 때 이상하게 저는 자꾸만 미안해지곤 합니다.


몇 년 전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늦은 밤 퇴근을 할 때였어요.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지하철을 내리면 어김없이 엄마는 지하철 입구로 마중을 나와 있었죠. 저 멀리서 저를 발견하면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걸 확인했으니 되었다고 생각한 탓인지 눈이 마주치면 엄마는 뒤로 돌아 저 멀리 집을 향해 제 앞에서 아장아장 걸어갔어요. 근데 그때 본 뒷모습이 아주 오래도록 잊히지 않아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너무 작은 사람 한 명이 저 멀리에서 걸어가고 있었거든요. 괜찮다니까 왜 또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있다가 나왔느냐며 제가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면 이제는 그만 나와줄까 싶어 유독 더 툴툴댔건만 들은 척도 안 하고 저 앞으로 걸어가던 뒷모습. 그 작은 뒷모습을 보는데 이 사람의 작아짐으로 제가 자라난 것 같아 그만 자라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만 자라면 이 사람이 작아지는 걸 멈출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왜 자꾸만 미안해지는 걸까요. 왜 사랑을 이기적인 방법으로 밖에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여러분은 사랑을 잘 전하고 계세요? 사랑을 더 말하고, 상대가 받고 싶은 사랑의 형태로 주어야지 다짐을 해보지만 저는 아직 그게 쉽지 않아요. 그래도 아주 조금씩은 연습을 해보려고 해요. 미안함 보다는 고마움을, 사랑을 사랑으로 전하는 연습을 계속해볼게요. 당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일연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