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어보지 못한 내가 부러운 당신에게

by 일연

그때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되어본 적 없는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독일어로 "페른베"라고 부른다. 신유진 작가님의 소설 <페른베>에서 이 단어를 만났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행복만 했을 거라고, 완벽한 나의 자리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방황했던 나의 마음은 '페른베'가 아니었을까.


어디에 있어도 지금 여기에 속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꾸만 내가 머물던 곳에서 떠났다. 6번의 이직과 10번의 이별. 계속해서 떠나고 쉼 없이 이동했다. 일하는 곳을 바꾸면, 만나고 있는 사람을 바꾸면, 그렇게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떠나면 내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적합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제자리가 아니라는 기분. 그렇게 나는 나에게 꼭 맞는 제자리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으며 계속해서 떠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위해 준비된 것만 같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이상으로 가득한 제자리를 꿈꾸면서 존재하지 않는 제자리를 찾아 떠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되어보지 못한 나를 그리워하면서 '다른 일을 했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완벽한 삶이 있을 거라고, 그 삶 속에서 나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뒤돌아보면 결국 나는 나와 붙어있는 것이 내내 불편했고, 상상 속에 그려놓은 완벽한 삶에 나를 데려다 놓으면 그땐 비로소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행복이 무엇인지, 완벽한 삶은 무엇인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채로. 하지만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아무리 떠나도 끝내 나는 꿈꾸던 나의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스물일곱 어느 겨울날.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을 보고 있던 나는 공연을 보는 내내 굳은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자 도망치듯 가방을 챙겨서는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어릴 적 무용을 좋아했던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순간이 그저 행복했다. 처음 발레슈즈를 신었던 일곱 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수업을 마치면 연습실로 달려가 해가 질 때까지 무용을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타고난 체형을 가지지 못해서. 수많은 이유를 가져다 붙이면서 무용을 그만두어야 했을 때 나는 다시는 무용 공연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한참을 무용과 멀어져 있다가 용기 내어 다시 공연을 보러 간 날. 무대 위가 아닌 객석에서 공연을 바라보는 나는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객석이 아닌 무대라는 것이 낯설었다.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발레리나들. 무대 위에서 밝은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출 때의 그 희열이 그들의 눈빛에 고스란히 보였다. 이 순간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의 눈빛을.


그 뒤로도 나는 한참을 되어 보지 못한 삶을 꿈꾸면서 기어코 되어버린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카페에서 친구와 마주 앉아 살고 싶었던 삶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때 조금 더 용기를 내었더라면, 그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말 끝을 흐리며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올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을 삼킨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담담하게 창 밖을 바라보는데 친구는 가만히 나에게 말을 건네주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너는 지금의 너를 부러워하고 있을 거야."


공연을 준비하면서 밤늦게 연습실에서 나오는 나는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혼자 살았더라면 내 삶이 완벽했을 거라고 혼자인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되어보지 못한 삶을 꿈꾸며, 어딘가에는 내가 바라는 행복이 있을 거라는 마음. 그렇게 내 몫이 아닌 삶을 바라며 지금 있는 이곳에 발 붙이지 못한 채로 떠돌며 살던 나에게 친구의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어딘가에 있는, 되어보지 못한 나는 지금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금 나의 이 삶을 충만하게 살아내는 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환상 속 행복을 찾아 부유하던 마음을 나에게로 데려와 이 삶을 살아내는 일이다.


공연을 보다 뛰쳐나온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새로 산 슈즈를 들고 발레 학원을 찾아갔다. 쁠리에, 탄듀, 바뜨망, 쁠리에. 바를 잡고 동작을 하나 둘 따라 한다. 어릴 적 그랬듯이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되어보지 못한 내가 될 수 없어도, 나에게 주어져버린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몫을 살아내기로 했다. 발레 슈즈를 신을 때마다 되어 본 적 없는 나를 만나 그곳의 삶은 어떠한지 또 다른 나에게 안부를 건넨다. "그 삶은 어때? 거긴 행복해?" "응, 제법 괜찮아. 지금 너의 삶이 그러하듯이."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항상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했어요. 내가 되고 싶었던 것들. 그럼에도 내 몫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그리워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았어요. 방황을 하면서 결국 제가 다다르고 싶었던 곳은 막연하게 행복이 있는 곳이었어요. 행복이 무엇인지, 완벽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완벽한 나의 자리가 다른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바람으로요.


그럴 때 제 친구가 해준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너는 지금의 너를 부러워하고 있을 거야."


당신은 어떤 삶을 꿈꿔보았나요. 지금 이 모습이 아닌 다른 삶을 꿈꿔본 적이 있나요. 그리고 완벽한 나의 자리를 찾아 떠돌아보신 적도 있으세요? 오랜 시간 그렇게 떠돌았던 저는 이제야 제 삶에 두 발을 딛고 선 기분이 들어요. 완벽한 나의 자리가 있는지, 그 제자리에 이르면 행복할 수 있을지. 이제는 이 질문에 아니라고, 그 삶과 지금 이 삶이 그리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답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딘가에 있는 내가 그리워하고 있을 지금 이 삶을 이대로 살아내 보는 건 어떨까요.


이렇게 말을 하고 저는 또 제자리를 찾아 떠돌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자꾸만 어딘가에 있을 내가 부러워 부유하기 시작할 때면 이 글을 다시 꺼내 읽으려고 해요. 만약 당신도 나와 같다면,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나의 자리를 만들어 보기를, 부유하던 마음을 가져와 그 사이 놓쳐버린 많은 순간들을 붙잡아 살아내기를 바라요. 언제나처럼 저도 그렇게 해볼게요.


오늘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