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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변호사 Apr 24. 2019

재판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멋있게 변론하나요?

나는 송무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변호사 중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하기 쉬운 '소송업무' 즉 '송무'를 하는 경우는 법무법인 혹은 법률사무소라고 불리는 로펌에서 일을 하게 된다. 로펌이 아닌 일반 회사 내부 법무팀 등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고 이 경우는 사내변호사 Inhouse Lawyer라고 하며, 그밖에 공공기관 등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영화나 드라마에 변호사가 등장하는 경우에는 법원에 가서 변론을 하는 송무 담당 변호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가장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변호사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평소에 송무를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들에 대해 답하며 변호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얘기해보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멋있게 변론하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듯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극중에서 다뤄지는 변호사의 모습은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 사실 변호사들의 실제 삶이나 법정에서의 실제 모습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수도 없이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만 주구장창 나와야 할 텐데 그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우선 변호사는 재판 준비 단계에서 재판이 있는 날('변론기일'이라고 한다) 전에 미리 주장할 내용, 증거 자료 등을 다 써서 제출한다. 분량은 짧을 때도 있고 길 때에는 몇 십페이지가 되기도 한다. 이미 이렇게 주장하려는 내용을 잘 정리하여 제출해두었기 때문에 실제 재판에 가면 위 내용을 줄줄줄 멋지게 일어나서 웅변하듯이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해당 내용을 확인한 재판부가  "0월 0일자 준비서면 진술"이라고 말하면 그 자체로 내가 미리 적어서 제출한 주장 내용은 다 말한것이 된다.


가끔 아주 드물게 구두변론 즉, 주장하는 내용을 요약해서 말로 해보라고 하는 재판부도 있다. 보통 재판에 출석 할 때에는 해당 사건의 담당변호사 즉 미리 서면을 써서 낸 변호사 본인이 출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간략히 요약해서 요지만 말하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재판은 사실상 굉장히 빨리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간단할 경우에는 한 사건의 재판 진행에 소요되는 시간이 5분을 채 넘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놀라운 사실은 재판은 변호사가 대리인 (형사사건의 경우 변호인)으로 직접 출석하여야 하기 때문에, 지방 재판일 경우라도 서울 소재 내 어떤 법원에서의 재판일지라도 직접 가야 한다. 그말은 즉, 왕복 3-4시간이 걸려서(지방 재판은 편도 3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법원에 도착하고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법정에 들어가서 5분만에 재판이 끝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매우 더운날 혹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날 무거운 기록이 가득 들어있는 서류가방을 들고 법원에 도착하였는데, 증인신문을 하기로 한 날 증인이 나오지 않아 그대로 끝났다거나 이렇듯 5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빠르게 재판이 끝날 경우에는 이게 참 무슨 21세기스럽지 않은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화상 재판 도입을 적극 추천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재판 진행 중 긴장감이 맴돌고 극적으로 승소와 패소가 갈리는 경우가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주 드물게 그런 경우도 있다. 주로 증인신문에서 그런 경우가 있는데, 예상치 못하게 증인이 우리측에 유리한 진술을 갑자기 해주는 경우(땡큐!!!) 혹은 우리측 증인인데 갑자기 우리에게 너무나 불리한 심지어 사실과도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경우(이 때 나의 표정은, 응??? 저기요???) 손에 땀이 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증인신문 내용도 미리 서로 파악하고 있고, 증인신문 과정에서 그동안 양쪽이 주장한 내용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실이 나오는 경우도 많지 않거니와 그렇다 하더라도 증인의 증언만으로 모든것이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때가 많아서 그렇게 드라마틱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면 변호사는 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보신다면, 주로 여러 사건들과 관련해서 미리 제출할 서면들을 작성하고 증거를 정리하는 등 문서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원고와 피고 양쪽이 제출한 (형사의 경우 수사기록 등)각종 서면들을 묶어 놓은 수십 아니 수백페이지의 자료들(소위 "기록")을 살펴보고 사건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간단히 말했지만 사실 이 작업이 굉장히 힘들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 여담이지만 이렇게 책상앞에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너무너무 많았기 때문에 종이 더미에 짓눌려 살던 나는 이렇게만 살 수는 없다! 라며 운동을 시작했고, 그렇게 완전히 운동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일과 운동 이야기는 이후에 쭉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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