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통역을 하고 있다.
늦은 밤 온갖 자료들과 씨름하며 서면을 쓰고 있으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로스쿨 재학 중에는 모든 것이 정돈된 상태에서 주어졌다. 매일 읽는 기본서도, 판례도 명쾌한 논리로 정해진 답을 알려 주었고, 하루에도 수 차례 풀어나가는 기출문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완벽한 모범답안을 써내기에 좋은 핵심만 간추려진 자료들로 가득했다.
비록 시험을 마치고 난 후에는 눈 앞에서 뻔히 손을 흔들며 "어이 거기, 나 함정 여기 있는데, 못 보고 지나칠 텐가?"라며 분명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단서들이 매직아이처럼 떠오르는 신비로운 현상이 펼쳐지지만.
시간 순서로 잘 짜인 사실관계, 모든 사실관계를 적절하게 입증하는 증거들, 민 형법상 기본서에 나오는 개념과 주요 판례들의 판시사항을 그대로 녹여내기 (어쩜 그렇게) 딱 좋은 상황들까지.
그렇게 나는 정제된 세상 속에서 살아왔다. 마치 그것이 실제 세상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뭐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뭔 소리지 지금?"
야근을 하면서 가장 많이 (심지어 육성으로) 뿜어내는 말들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이메일이 후두두둑, 카톡이 다다다다. "카톡"도 아닌 "카가가가가가가 카톡"을 외치며 도대체 이 것이 다 무엇이냔 말인지 알 수도 없는 자료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소장, 준비서면, 의견서 쓰기.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고, 아니 일단 당신은 누구고,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니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눈 앞에 앉혀놓고 소상히 하나하나 말해보라며 묻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국지성 호우처럼 눈 앞에 쏟아진 이 자료들로 그럴싸한 서면을 써내는 일이다.
이것은 마치 물만 끓이고 재료를 몽땅 넣은 채 팔팔 끓이면 기가 막힌 깊은 손맛 우러나는 된장찌개가 뚝딱 끓여져 나오는 밀키트로만 요리를 하다가 눈 앞에 콩을 주며 "자네 이제 어디 한 번 메주를 쑤어 볼 텐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거지.
자료를 읽고, 또 읽고,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어.쩌.라.는.거.지!?"를 열 번 즈음 외치고 나면, 신기하게도 사실관계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이런 일이 있었던 후에 그다음에 이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구나. 이 자료는 이러한 사실관계를 뒷받침한다고 보낸 자료이겠구나. 이 부분은 앞에서 했던 말과 좀 다른데, 명백한 증거와 비교해보니 앞에서 했던 말이 사실을 조금 잘못 기억했던 것 같은데?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증거를 정리하고, 우리가 주장해야 할 내용들을 찾고, 우리가 주장해볼 수 있는 것들을 검색하고, 유사한 사례의 판례들을 검색한다. 그렇게 몇 시간 아니 며칠의 시간을 들이고 나면, 조금씩, 조금씩 날것의 거친 자료들이 1. 당사자 관계 2. 계약 체결의 경위 3. 피고의 계약의무 불이행 과 같은 큼지막한 기둥 아래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아 변호사는 통역을 하는 일이구나."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와 날것의 자료들 뒤에서 내가 이렇게 억울하다고, 이건 지금 아니지 않냐고. 그들만의 조금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조금은 다듬어지지 않은 자료들로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그들을 만난 나는 그래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찾아 법원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듬고 법조인의 언어로 통역하여 법원에 전달한다.
'변호사는 통역을 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조금 더 일찍 선배 변호사님들로부터 들었더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났던 많은 선배 변호사님들은 "싸우자. 이기자. 쟁취하자.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모습만을 보여주었고,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좀처럼 "쟁취"니 "승리"니 그런 단어에 익숙해지지 않는(아니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게 되는) 나로서는 변호사가 하는 일이란 '쌈박질'이구나 라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재판에서 하는 일은 상대와 논쟁을 하고, 나의 주장을 하고, 상대의 주장이 (다르지 않고) 틀렸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누군가 전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 힘든 이들을 대신하여 그들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것이 변호사가 하는 일이라고 누구라도 나에게 말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라도 내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그 과정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도, 말하고자 하나 제대로 전할 수 없는 이들을 도와 대신 말해줄 수 있다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답답해하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아주 늦은 새벽까지 누군가 꼭 전하고 싶어 하는 말을 통역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를 이들의 언어로 전달하여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