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조일연 May 02. 2021

저는 금수저 변호사가 아닙니다.

내 구김살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날들의 고백

몇 달 전 모르는 이로부터 다이렉트 메시지가 왔다. 기차 시간에 늦어 급히 오송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나중에 확인을 해야지 라며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려던 순간, 우연히 미리보기로 읽게 된 메시지에 멈추어 섰다.

대체 왜. 내가 무엇을 했기에.  

메시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연히 나의 SNS 계정을 보게 되었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원하는 것을 모두 하며 사는 삶이 너무 질투가 나고 부럽다고. 그런 마음 때문에 시험에 들어 한동안 기도를 하였노라고.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시험이 될 수 있다니.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 저렇게 긴 장문의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질투"를 했고 "부러웠노라"라고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결국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해준 이에 대한 고마움과 나로 인해 힘들었을 시간에 대한 미안함으로 장문의 답장을 써 내려갔다.

어떠한 모습이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겠으나, 나의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다고. 그리고 SNS에 보이는 내 모습 중 어떠한 모습을 보더라도 자세히 본다면 결코 부유하지도, 모든 것을 타고나지도 않았다는 것이 모든 피드마다 드러나 있다고.


그럼에도 내가 그것을 오해하도록 표현했다면 미안하다고. 무엇보다 타고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어려운 환경에서 여기까지 오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이라고. 그러니 부디 무엇보다 나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기도를 하지는 말아달라고.






기차역을 지나칠 만큼 버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창문 밖 멀찍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고마움과 미안함에 범벅이 되었던 감정 속에서 슬쩍 머리를 내밀고 의문과 억울함이 올라왔다.

그 누구에게도 못지않게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는데, 다른 이들만큼이라도 살기 위해 매 순간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라는 말을 들어가며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할까. 혹여 이 사람 외에 용기 내어 말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은연중에 나의 모습을 통해 같은 상처를 받는 이들이 있다면 어떡하나. 하지만 대체 왜. 내가 무엇을.


한참 동안 고민 끝에 그 사람이 보내온 뒤이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고 "로스쿨", "변호사", "학벌", "다양한 활동" 등이 누군가에게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모든 것을 누리며, 타고난 능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면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들었다.


그렇구나.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진짜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물 밑에서 미친 듯이 바둥거리듯 헤엄치는 내 발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그저 물 위에 우아하게 떠있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오롯이 들어내는 것이 나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 될까 두려웠고, 나를 대하는 이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내가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나의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굳이 내가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 이면에는 어쩌면 나도 고생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걔는 집이 잘살아. 그래서 애가 구김살이 없어."라는 지인의 흘려 지나가듯 한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라면 구김살이 없구나. 그러면 나에게는 나도 모를 구김살들이 있을까. 혹여 누군가 나의 구김살들을 눈치채면 어떡하지.


누구라도 알아챌까 하는 마음에 뒤돌아서 나도 모를 내 구김살들을 벅벅 문질러 편 채 부유한 환경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자란 이들과 같은 마음을 나도 가질 수 있다고, 그것은 자라온 환경이 아닌 나의 노력과 나만의 경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믿음에 확신이 있고, 지금 나의 모습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모든 경험은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 되어 소중하지 않은 조각들이 없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어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결코 부유한 가정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손쉽게 얻으며 성장하지 못했다. 희미한 기억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은 아주 어릴 적에는 부유했던 적이 있었더라고 어른들은 늘 말했다. 그러나 사업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아빠의 사업이 무너진 후로 우리 가정은 긴 어려움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학창 시절 학원에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것은 그 시절 학교에 돌던 소문대로 내가 고액의 과외를 받고 있어서가 아니라 학원비가 없어서였고, 재수를 할 때 남들이 모두 간다는 그 유명한 강남의 00학원 종로의 **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방 밖으로 1년 동안 나가지 않은 채 혼자 공부를 해야 했던 이유는 혼자 공부를 척척 해낼 만큼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재수학원을 다닐 학원비가 없어서였다.

학부생 시절 매일같이 중앙도서관을 내 방 삼아 막차를 타고 집에 가고, 첫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던 것은 B+라도 나오는 날에는 당장 다음 학기 장학금이 끊기기 때문이었고, 방학마다 영어 캠프에서 일을 했던 것은 생활비를 벌어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시공부를 할 때에도 신림동에 방을 구해 고시학원을 다니며 공부하지 못하고, 집 앞 독서실을 간신히 끊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이 듣고 남은 인강을 싼값에 구입해 2배속으로 들어야 했던 것은 값비싼 고시 공부 인강 비용과 신림동 방값을 지원해 달라고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어서였고,


로스쿨에 진학을 한 것도 그 누구도 돈을 지원해주지 않는 고시공부와 달리 로스쿨은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나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로스쿨에 다니는 내내 값비싼 책값과 학교 수업이 있음에도 다시 들어야 하는 인터넷 강의 비용이며 온갖 수험교재를 감당을 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꼭 필요한 페이지는 복사를 하여 공부를 했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에는 빌린 책의 페이지를 통째로 외워버려야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고, 독해지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매 순간 나는 보기보다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악물고 버텨서 하고 싶은 것을 참고, 가고 싶은 곳을 가지 않고,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만 살 수 있었기에.

때때로 내가 하는 행동들이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악착같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혹여나 나에게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구김살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나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아직도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기에 나도 모르게 나오는 모습들 일지 모른다.


보이는 모습이 무엇이건 간에 그 뒤에 겉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치열하게 살았던 순간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전폭적인 지원이 없이도 혼자 부득부득 버텨내며 여기까지 왔다고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식상하기 그지없는 말로 이어질까 두려워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혹여나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나는 저렇게 풍족하게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니 여기서 포기할래"라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에 나의 이야기가 "저 사람도 버텨낸 거구나."라는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에 글을 적어 내려간다.


아직 사회생활 경험도 많지 않은 내가 느끼기에도 살아가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변호사로서 살아가는 것 역시 내가 로스쿨을 들어갈 때보다 많은 상황이 바뀌었고, 어린 마음에 막연하게 꿈꾸었던 이상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매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렇게 참고 공부하면, 일단 합격만 하면, 나에게 모든 보상이 주어지고 모든 것이 보장되는 평안한 앞날이 펼쳐지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 달콤한 꿈을 깨버려서 미안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걸었던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런데 자신에게는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주위의 누군가들과 달리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퍼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포기를 하고자 한다면.

그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막연한 말밖에 전할 수 없어 미안하지만, 분명히 살아내면 어디선가 신기하게 살아내게 될 길이 보일 거라고. 물론 그 길이 완벽하게 평탄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는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내게 될 방법은 있을 것이고, 내가 힘든 순간에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저마다의 힘듦이 다르고, 같은 힘듦을 마주했을 때 각자가 느끼는 힘듦의 무게 또한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각자의 힘듦을 버텨내면서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위로를 전한다.


보이지 않는 힘듦을 이겨내고 있을 그대들에게 같이 살 아내 보자고 위로를 전하며. 부디 그럼에도 우리가 이 길을 가는 것을 멈추지는 말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변호사는 통역을 한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다른 SNS로 가입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