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김살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날들의 고백
“로스쿨을 졸업했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이 말을 하면 예외 없이 따라오는 말이 있다. “집에서 지원을 많이 받으셨겠어요. 어려움 없이 곱게 크셨겠어요.” ‘내가 그렇게 보이나. 그렇다면 다행이네. 사람의 속에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이렇게 겉만 보고 알 수 없는 법이구나.’ 속으로 헛헛하게 웃어넘겼다.
몇 해 전 한창 세종시에서 일하고 있을 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기차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오송역으로 향하는 BRT 버스에 올라탔다. 정신없이 버스카드를 찍고 서울로 가져갈 짐을 이고 지고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시간을 보려고 언뜻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니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떠 있다. 정신도 없는데 나중에 확인해야지 라면서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려는 순간, 미리 보기로 언뜻 읽게 된 메시지 첫 줄에 그대로 멈추었다. ‘대체 왜. 내가 어떻게 보였길래.’ 메시지의 내용은 이랬다. 우연히 나의 SNS 계정을 보게 되었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원하는 것을 다 하며 사는 삶이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난다고. 그런 마음 때문에 시험에 들어 한동안 기도를 하였노라고. 어떻게 답을 할지 몰라 오송역을 향해 달리는 창문 밖 너른 풀밭을 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구김살이 없어 보이고 싶어서 아등바등했던 순간들,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결핍, 그늘이 있다는 것을 감추기 급급했던 순간들, 그럼에도 꾸역꾸역 버텨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결핍이 없어서 한 번도 구겨진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순간들. 그러니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에는 아 들키지 않았구나 라는 묘한 안도감과 그렇게 보이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나의 노력이 무력해진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이렇게 긴 메시지를 꾹꾹 눌러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끝내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해준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나 또한 용기를 내보겠다는 마음으로 장문의 답장을 써 내려갔다.
나의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다고. 보이는 모습은 실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 나는 부유하지도 모든 것을 타고나지도 않았다고. 능력도 환경도 타고나지 못한 주제에 여기까지 오려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그러니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면서 스스로나 처한 환경을 원망하지는 말아 달라고. 기차역을 지나칠 만큼 버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답장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창문 밖 멀찍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고마움과 미안함에 범벅이 되었던 감정을 지나 슬며시 구김이 없어 보이려고 애썼던 지난날들의 내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애썼구나 참.
일도 취미도 늘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라는 말까지도. ‘나는 이래야만 해. 타고나지 못했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이렇게 해야만 남들만큼 살 수 있어. 그리고 내 안에 오래도록 자리해서 이제는 익숙해진 불안을 잠재우려면 나는 이렇게 해야만 해.’ 오랜 시간 이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백조가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지만 그 아래에서는 미친 듯이 바둥거리며 헤엄치는 것처럼. 나는 그 백조의 발을 내보일 자신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드러내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까 두려웠고, 나의 보잘것없음을 들켜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애써 쌓아 올린 그럴듯함 안에 숨고 싶었는데 나의 속살을 꺼내 보이며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다.
"걔는 집이 잘살아. 그래서 애가 구김살이 없어." 지인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다른 변호사를 이야기하며 흘려 지나가듯 한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라면 구김살이 없구나. 그러면 나에게는 나도 모를 구김살들이 있을까. 혹여 누군가 나의 구김살들을 눈치채면 어떡하지. 그렇게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올 때면 나는 집에 돌아와 나만 아는 내 구김살들을 들여다보며 더 세게 벅벅 문질러 펴곤 했다.
부모님과 골프를 치고, 사진으로만 보아도 평생 힘든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뽀얗고 고운 부모님 사진을 자랑스럽게 올리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고는 순간 시선이 바닥으로 향하는 걸 들킬까 싶어 아무렇지 않은 척 부러 입꼬리를 올리고 부러움이나 원망 같은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쌓아 올린 것들 덕분에 그렇게 가만히 앉아 우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 아무 문제 없이 나의 쪼그라드는 마음은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우와 라운딩 어땠어?” 라며 괜히 앞에 놓인 커피잔의 빨대만 더 세게 잘근잘근 씹으면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우아해 보이는 법에 제법 익숙해졌다.
나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아주 어릴 적에는 부유했던 적이 있었더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러나 사업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아빠의 사업이 무너진 후로 우리 가정은 긴 어려움의 시기를 겼었다. 학창 시절 학원에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것은 그 시절 학교에 돌던 소문대로 고액 과외를 받고 있어서가 아니라 학원비가 없어서였고, 재수를 할 때 남들이 모두 간다는 그 유명한 강남이나 종로 재수학원에 다니지 못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혼자 공부를 해야 했던 이유는 혼자서도 공부를 척척 해낼 만큼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재수학원을 다닐 학원비가 없어서였다.
학부생 시절 매일같이 중앙도서관을 내 방 삼아 막차를 타고 집에 가고, 첫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던 것은 B+라도 나오는 날에는 당장 다음 학기 장학금이 끊기기 때문이었고, 방학마다 영어 캠프에서 일을 했던 것은 용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시공부를 할 때에는 신림동에 방을 구해 고시학원을 다니지 못해 집 앞 독서실에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이 듣고 남은 인강을 (우리는 이걸 “둠강”이라고 부른다 어둠의 강의인 걸까) 싼값에 구입해 남은 시간이 넉넉지 않아 2배속으로 들어야 했다. 로스쿨에 진학을 한 것도 고시공부와 다르게 로스쿨은 이 악물고 공부만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였다. 로스쿨에 다니는 내내 비싼 책값과 온갖 수험 교재비를 감당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필요한 페이지만 복사를 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에는 빌린 책의 페이지를 통째로 외워버렸다.
누구도 나에게 악착같이 살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야만 했기에 자꾸만 악착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이런 악착같음을 더 들키고 싶지 않아 점점 더 애썼다.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악착같이 사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지, 그러다 나의 구김살이 들키면 어쩌지. 내가 겪어온 시간들을 온전히 나를 이루는 조각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이렇게 나를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보이려 애쓰면 애쓸수록 자꾸만 나는 더 쪼그라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송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 메시지를 받은 후에야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누군가가 부러워서 밉다는 마음 앞에서 나도 이렇게 힘들었다며 미움을 받기 싫어서였을까 그 솔직함만큼 나도 숨기고 싶은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생겨서였을까.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들키지 않으려 애썼던 모습에서 빠져나와 애썼던 내가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순간도, 어두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애썼던 순간도, 다림질을 해보았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구겨진 흔적이나 불쑥불쑥 올라오는 결핍까지도 모두 내 모습이구나. 그 와중에 여기까지 참 잘 왔구나 싶어 지금은 그런 나 자신이 애틋하다. 그렇게 내가 나를 안아주는 순간, 그제야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들까지 모두 끄집어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힘들었던 시절도 나의 일부이구나.
내가 나의 모서리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나는 대체로 더 불안했고 온전히 나로 살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나 아닌 누군가로 꾸며내야 받아들여질 것 같은 기분. 그러니 더 애써서 그럴듯한 모습을 꾸며내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한 모든 경험들이 나를 이루는 조각이라는 것을, 나를 이루는 조각 들 중 소중하지 않은 조각은 없다는 것을 안다. 조금 구겨진 모습도, 그럼에도 애써서 구김을 펴내려고 애쓰는 것도 모두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니까.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준 그 사람에게는 나의 모서리를 꺼내어 보게 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어떠하든 어쩌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핍이나 부족함 나만 아는 구겨짐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러니 저 사람도 나도 다들 구겨진 모서리를 안고 살아가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고 있구나 라며 지금의 애쓰는 나를 그대로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지 못해서 오랜 시간 나를 미워했던 것처럼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기를. 조금 더 따뜻하게 스스로의 시간을 안아주었으면. 그리하여 억지로 힘을 짜내어 버티기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저마다의 힘듦이 다르고, 같은 힘듦을 마주했을 때 각자가 느끼는 무게 또한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각자의 힘듦을 버텨내면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애써야 했던 시간마저도 그럼에도 버텨서 여기까지 살아낸 나의 애틋한 모습까지도 모두 안아줄 수 있기를. 그러다 또 애써야 하는 시간이 오더라도 그럼에도 이 길을 가는 것을 멈추지 말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