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변호사 Nov 16. 2019

로스쿨 괴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불과 며칠 전 로스쿨생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그토록 힘들다는 로스쿨 3학년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건대 분명 학업에서 오는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리라.


로스쿨을 졸업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시험. 말도 안 되는 공부량. 암기해야 할 수많은 두꺼운 책들. 점점 낮아지는 합격률. 시시때때로 돌아오는 인턴 지원시기와 연이어 들려오는 동기들의 로펌 컨펌 소식.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시험은 단답형 단 한 문제로 학점 알파벳을 갈라버린다. 이렇게 나뉜 성적은 졸업 후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은지를 결정하는데 치명타가 되고, 당장에 여름방학 때 원하는 로펌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느냐 여부를 결정해버린다.


모두가 1등을 할 수는 없고, 등수라는 것은 그 존재 의미부터 당연하듯이 내가 남보다 "더 잘하거나" 혹은 "더 못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를 가둔다.




로스쿨 재학 중 영화에나 나올법한 소름 끼치는 일을 겪었다. 로스쿨 3학년 재학 중, 우리는 검찰을 상대로 사법고시 폐지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며 행동으로 움직였다. 추운 겨울에 법원과 검찰청 앞에 서서 1인 시위를 했고, 길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원래 계획되어있던 법의 내용과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검찰에 우리의 강력한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검찰실무시험' 보이콧을 단행했다. 검찰실무시험은 해당 과목을 들은 학생들에 한해 보지만 실질적으로 전교생이 이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검찰청에서 나온 검사님이 진행하시고 시험 또한 전국의 모든 로스쿨생이 같은 날 검찰청에서 제출한 같은 문제를 푼다. 그리고 각 학교별로 해당 수업에서 검찰실무 성적이 우수한 사람들에게는 검찰에서 실무수습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나중에 검사가 되고자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모든 과정은 매우 중요하며 여기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야만 한다.


그 와중에 검찰실무시험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동기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시험 시간에 학생회 중 일부가 시험실 문 앞을 지키기로 했고 어떤 학교는 단체 카톡방에서 해당 시험 시간에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인증하는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25개의 로스쿨. 모두가 같은 시험문제를 풀고 있어야 할 바로 그 시간에 모두는 집에 혹은 기숙사에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 머물면서 단체 행동에 함께 했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아니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영화에나 나올법한 일이 벌어졌다.


모 학교 로스쿨에서 검찰실무시험에 응시한 수험생이 1명 있다는 소식. 모두가 발칵 뒤집어졌다. 모든 학생들이 다 보이콧을 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혼자 들어가서 시험을 봤을까. 그리고 그 학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험을 보이콧한다는 것은 수강생 모두에게 생각보다 큰 신뢰가 필요하다. 전원이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을 때, 시험문제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다시 출제할 필요도 없고 시험일자를 다시 잡아서 시험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그 시험장에 들어간다면? 문제가 유출된 이상 출제기관은 시험문제를 처음부터 다 다시 출제해야 하거나 혹은 이를 원치 않는다면 해당 과목을 수강했던 모든 수강생들은 F를 받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알겠지만 로스쿨 성적표에 F가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모두를 경악시킨 이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니. 모 학교 로스쿨에서 검찰실무수업 반장을 하던 이가 있었다. 이 수업은 검사인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에 의견 전달이 필요해서 필수로 각 수업마다 반장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반장. 즉 모든 수강생을 단체 카톡방에 모아놓고 "우리는 이번에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이 시험을 보이콧합시다. 시험장 앞을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라고 했던 바로 그! 반장이!! 문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할 그 반장이!!!


혼자. 시험을 보러. 시험장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혼자 시험을 본 만큼 당연히 A라는 성적을 받았고, 검찰에 실무수습을 나갔고,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검사가 되었다고 한다.


3년의 로스쿨 생활 동안 다른 학교 선후배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많은 괴담을 들었지만 이 괴담만큼 간담회 서늘했던 적이 없었다.


시험 시작 1분 전까지 혹여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고개를 돌려 텅 빈 복도를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지막 순간.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A라는 알파벳이 박혀있을 자신의 성적표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시험을 보러 들어갔을까.


모든 학생들이 보이콧을 할 거라 알고 있던 그 교수님은,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 저벅저벅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반장을 보고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로스쿨 괴담. 이건 막연히 그럴 수도 있다더라가 아닌 내가 직접 겪은 현실 그 자체였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학점이 무엇이길래. 성공이 무엇이길래. 과연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야 했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잔인해졌을까.




벌써 변호사로 일을 한 지 3년째가 되어가는데 이제 뒤돌아보면 그저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떠오른다.


과연 그들은 그렇게 해서 얻은 것으로 인해 행복해졌을까. 1등을 하고, A를 받고, 수석졸업을 하고, 합격을 하고, 소위 말하는 성공을 하면 행복해질까. 과연 그게 끝일까.


적어도 고작 3년 정도 사회생활을 겪어본 내가 느끼는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


물론 그 순간에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하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내가 목숨을 걸고 도전했던 것에서 무언가를 성취해냈다는 뿌듯함과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하지만 그것이 내 평생의 매 순간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변호사, 판사, 검사가 되어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매 순간 평가받고, 사회적 점수가 매겨지고, 더 좋은 로펌에 갔느니, 검사로서 승진을 했느니, 부장판사가 되었느니와 같은 넘어야 할 더 높은 허들이 끝도 없이 내 앞을 턱 턱 가로막을 것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나의 그리고 다른 이들의 성취를 부정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그 결과를 얻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값진 일임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방법이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짓밟고, 신뢰를 저버리고 혹은 나 자신을 내가 믿지 못하고 괴롭히는 방법이었어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분명 그 모든 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한들 다음 허들에서 또 다른 편법을 이용해 그 허들을 넘어야 하고, 그들은 '자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어낸 성취'를 유지하기 위해 더더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요즘 로스쿨 재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쟁이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랜만에 찾아간 학교에서 교수님들은 재학생들 분위기가 예전과 달리 많이 삭막해졌다고 걱정을 하신다. 대체 얼마나 더 삭막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학부생들조차도 더 이상 연고전에 가지 않고, 축제에서 방방 뛰며 놀지 않고 중도에서 인강을 들으며 스터디를 한다고 한다.


그 순간에, 지금만이 느낄 수 있는 그 행복함을 모른 채 살아가는 그들이 너무나 안타깝고,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을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불과 나와 몇 년 차이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아주 조금 먼저 졸업을 하고 사회를 겪어보니, 결코 점수 1점과 학점 하나가 내 삶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어 더더욱 그들이 안쓰러워 보인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그들에게 기운 빠지게 하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 그저 입을 다물고 열심히 하라며 응원을 해준다.


하지만 아주 작은 바람이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되 적어도 그 과정이 타인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를, 악의적인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비뚤어진 욕심은 내려놓기를,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지도 말기를 바라본다.




로스쿨 재학 중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내 앞길이 캄캄해 보여서 열람실에 앉아있다가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며 벽에 머리를 사정없이 박아버렸던 적이 있다. 이딴 머리로 뭘 하겠다는 거냐며. 정말이지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로. 그리고 한참을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샤워기를 켜놓은 채로.


더 큰일을 저지를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너무 되는 일이 없으니까, 목숨을 잃는 일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만두었다.


나도 버텼으니 당신도 버티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 하겠다. 하지만 부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버리지는 말았으면, 그리고 경쟁과 성공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하지만 절대 그로 인해 자신을 잃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안타까운 선택을 한, 조금 일찍 져버린 꽃에게 조의를 표하며.


부디 그 어떤 순간에도 나도 너도 모두가 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