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접견을 다녀온 날
사는 것이 감옥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에 교도소 사진이 올라오면 자신이 사는 곳보다 나아 보인다며 수용자가 부럽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나조차도 집과 일터만 오가면서 하루 종일 일터에 갇혀 있다 보면 삶이 감옥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형사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의뢰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구속'이다. 법정 드라마에서는 구속된 피고인들을 보는 경우가 많고, 누구든 형사사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소위 말하는 "구치소, 교도소, 콩밥" 이런 단어들을 쉽게, 그러니까 제법 가볍게 떠올린다. 인터넷에도 흔히 "내가 너 콩밥 먹일 거다. 그냥 감옥 그까짓 것 갔다 오고 말지." 따위의 말들을 가볍게 흘리는 것을 보곤 한다. 이렇게 쉽게 떠올릴 수 있어서인지 처음 형사사건을 다루었을 때에는 구속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아무개 씨죠? 여기 서초경찰서입니다. 사기사건으로 고소장이 접수되었는데요, 언제 조사받으러 나오실 수 있으신가요?" 이 전화를 받은, 그러니까 조금 전까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아무개 씨는 본인이 일반인에서 피의자 아무개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이거 잡혀가는 거 아니야?"라며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잡혀간다’는 것, 즉, 구속이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의뢰인들은 가장 먼저 예외 없이 "저 구속되는 건 아니겠죠?"라고 묻는다. 사실 의뢰인만 구속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다.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인들에게 소름 끼치는 순간들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영장실질심사' (구속 전 피의자심문). 검찰에서 구속영장을 때리면 변호인에게는 짧게는 하루 때로는 반나절밖에 영장실질을 준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퇴근을 하다가 불려 가기도, 주말에 신나게 약속 장소로 향하다 억! 소리를 내며 회사로 달려가기도 한다. 몇 년 전.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자기계발을 해보겠다며 법률번역 수업을 듣기 위해 캠퍼스로 향하고 있었다. 주말 아침부터 공부를 하러 가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며,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나에게 주는 선물로 달달한 바닐라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커피를 사 들고 흐뭇한 미소를 띤 채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띠리링-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 불길하다. 뭐지 이 시간에. 부디 잘못 걸려온 전화이기를 바라며 전화를 받았다. 하, 의뢰인의 영장실질심사가 잡혔단다. 우리에게 주어진 준비시간은 반나절. 지금 당장 와줄 수 있겠냐는 파트너 변호사님의 조심스러운 부탁에 "네!"라고 답하며 들고 있던 따뜻하고 달달한 바닐라라떼를 한번 홀짝거리지도 못한 채 냅다 뛰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긴급 콜을 받고 달려 나온 변호사님들이 계셨다. 우리는 작성할 의견서 목록의 일부분씩 나눠 분배받은 후 사안을 파악하고, 의뢰인의 구속의 필요성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한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민첩하게,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는 만사를 제쳐두고 작성한 변호인 의견서 출력본을 들고 법원 당직실로 뛰었다. 의견서를 제출하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변호사들이 또 소름 끼쳐하는 단어가 있으니, (하 이건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You-know-who"와 같은 금기어이다.) 그건 바로 "법정구속"이다. 사람들은 형사사건으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하면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 파란색 수의를 입고 재판장 옆 문으로 경위의 인도를 받아 법정으로 들어서는 피고인을 떠올리지만, 이건 구치소에 있으면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도 많다. 민사사건처럼 자기 옷을 입고 집에서 자고 일어나 회사에 가듯 법정에 와서 방청석에 앉아있다가 사건 번호를 부르면 변호인과 함께 앞으로 나가 잠시 재판을 받고, 선고를 받는 날 전까지는 재판이 마치면 다시 법정 밖으로 나와 영화를 보러 가든, 친구를 만나 술 한잔을 마시러 가든 그렇게 어디로든 갈 수 있다.
하지만 법정구속은 다르다. 일상을 즐기며 커피도 마시고 그날 재판이 끝나면 근처 맛집도 가곤 하다가 모든 재판이 끝나고 선고기일에 판사님이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라고 집행유예 없이 징역형을 내리면, 피고인은 재판을 받던 바로 그 자리에서 방청석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입고 갔던 옷, 신고 있던 신발, 들고 있던 소지품을 들고 그대로 옆 문으로 바로 끌려 나가 구속이 되는 것이다. 선고를 들으러 법정 방청석으로 들어서기 전 법원 앞 카페에서 마셨던 커피가, 법원에 오기 위해 타고 온 지하철이 한 동안은 마주할 수 없는 자유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린다. 재판을 마치고 액땜했다며 한 잔 하자고 친구들과 잡아놓은 약속도, 집에 오면 시원하게 치킨에 맥주라도 하자고 가족들과 준비해 둔 저녁식사도 전부 물거품처럼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어느 날 방청석에 앉아 담당 사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 사건 피고인이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걸어 들어와 피고인석에 선다. 말끔한 양복차림에 조금은 긴장한 듯한 표정. 피고인의 잘 다려진 옷차림을 보아하니 오늘 무죄 선고만 나오면 산뜻한 기분으로 법정을 나서 친구들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 새롭게 살겠다는 다짐이 담겨있는 듯했다. 피고인은 무죄를 자신했던지 판결 선고를 하는 순간에도 제법 곧은 자세로 서서 판결 선고를 듣고 있었다. 판사님은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한다. 듣는 이들도 모두 긴장을 하기 시작하던 찰나,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엇. 이대로 끝났다. 뒷 말이 없어.
집행 유예 없이 실형 선고, 법정구속이다. "판사님 제가 차를 요 앞에 세워두고 왔는데 금방 차만 살짝 빼 주고 오면 안 될까요..?"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다가 빌다시피 하던 피고인. 방청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이 울며 달려 나가자 법정 경위가 가족들을 막고 피고인은 그런 가족들과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려고 울면서 방청석으로 몸을 던지다 경위들에게 끌려 법정 옆 문으로 사라졌다. 의정부지방법원 정문 앞 주차장에는 이렇게 커다랗게 쓰여 있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오늘 구속될 것 같은 분들은 차키 맡기고 가세요!" 이 표지판을 보고 변호사들끼리만 한참을 웃다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형사사건에서 모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구속이다.
구속 사건을 맡게 되면, 의뢰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자유다. 어떤 피고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형을 몇 개월이라도 줄여보자고 변호인을 선임하고, 제출할 자료를 찾기 위해 온 가족이 탄원서를 받으러 직장 동료에 동네 사람들까지 찾아다니며, 빚을 내서라도 합의를 시도한다.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된 피고인의 항소심을 진행하다 보면 뒤늦게 집행유예가 나오거나 형이 줄어들더라도 고작해야 형기보다 고작 3개월 정도 빨리 구치소를 나가는 것일 텐데,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이 시간이나마 빨리 나가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을 할까 싶은 순간도 있다. 3개월만이라도 감형을 받고 싶다던 의뢰인의 구치소 면회를 마치고 나오던 날이었다. 그 의뢰인은 형기가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의뢰인의 구치소 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과 가족들은 단 몇 개월을 위해 이렇게 간절히 노력하고 있구나. 대체 그 시간이 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기에. 문득 내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3개월은 어땠는지 지난 3개월의 시간을 돌아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시간. 딱히 이렇다 할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고 돌이켜보면 매일 아침에 힘들게 일어났고 눈뜨자마자 불만을 가득 안고서 출근을 했다. 일을 하면서 힘들다 죽겠다를 반복하다가 늦은 밤 퇴근을 하고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끼니를 때우고 잠자리에 들고.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이 일상이 당연하지 않다고 느꼈던 적이 있던가. 원할 때면 방문을 열고 나가 불광천을 따라 걸으며 산책을 하고 사람들을 마주치면서도 이 일상을 마치 원래 내 것인 것처럼 얼마나 당연하게만 여겼던가. 구치소 접견을 마치고 여러 겹의 문을 나와 사무실로 향하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는 이 일상을 왜 나는 자유를 빼앗긴 사람처럼 감옥 같다고만 여기면서 매 순간 불만으로 가득 채워 살았을까. 아무렇지 않은 듯 생각했던 불만으로 가득한 이 일상조차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자유일 텐데 어찌 이리 쉽게 일상의 의미를 잊고 살았는지.
평범한 하루를 결코 당연하지 않게 주어진 선물로 보고 난 후에야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의뢰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접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일상을 잃었다 되찾은 이들이 억울했던 비일상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면 그 평범한 하루가 더 평온하기를, 일상을 잃어본 시간 속에서 반성을 한 이들이라면 새로 얻은 일상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매일을 살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