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본 적 없는 방법으로 사랑을 하려는 당신에게

by 일연

나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받아본 적 없는 방법으로 사랑을 주는 일을. 무언가를 잘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사랑하고, 괜찮다 말해주고, 전적으로 편이 되어주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오만하게도.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 앞에서 나는 자꾸만 몸이 얼어붙었다.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면 분명 그들에게 위로도 사랑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건만 어느 순간 나는 "네가 잘했어야지. 이걸 준비했어야지." 그들을 위한다는 명목아래 어느새 그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그렇게나 닮고 싶지 않았던, 사랑을 주는 방법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의 엄마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라는 내내 무엇이든 잘 해내야 했다. 공부도, 일도, 운동까지도. 모든 것을 다. 자라는 동안에도 다 큰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어느새부턴가 나는 잘 해내는 게 너무도 당연한 사람이 되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도 잘했다는 칭찬을 받지 못했다. 잘 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러지 못할 때면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는 다그침이 돌아와 그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공부도, 일도, 연애까지도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는 질문을 듣는다. 이래야만 하니까. 나는 이렇게 잘 해내야만 인정도, 사랑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라고 말을 하려다 결국 이해받지 못할 거란 생각에 입을 닫았다. 그렇게 내 존재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감각은 나도 모르게 온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속절없이 무너져 버리는 누군가를 볼 때면 자꾸만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무너졌을 때 그러해야 했듯이 당신도 혼자 힘으로 일어나라고. 왜 그렇게 나약하냐고. 그렇게 무너져 버릴 수 있는 건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며. 나에게는 없던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부럽다가, 밉다가, 그런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었다.


회사에서 실수를 해 혼이 났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굳어진 표정을 애써 참고 어색한 위로를 건넸다. 그러니까 네가 잘했어야지 라는 말을 있는 힘껏 참아 누르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구에게 내뱉으려다 간신히 삼킨 말들이 내 안에서 울려 고막을 지나 귀 안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목소리. 괜찮지 않다는 목소리가.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목소리는 그렇게 울려 퍼지다 차츰 익숙한 목소리가 되어 고막을 울리더니 이내 나의 목소리로 바뀌어 내 몸에서 울리고 있었다.


나였구나. 힘들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다그치던 것도, 누구보다 냉정하고 혹독했던 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단 한 번도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한 것도 바로 나였다. 세상 모두가 날 평가하고 가혹하게 굴어도, 그들을 내가 어찌할 순 없어도 나는 전적으로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런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받아본 적 없는 방법으로 전적인 위로를, 응원을,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유독 힘든 하루를 집으로 보내고 돌아온 날, 카카오톡 창을 열어 내와의 대화 창을 열었다. 해야 할 일들과 잊지 말아야 할 일과로 가득한 메모장이 되어버린 카톡창을 열고는 한 글자 한 글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적어 내려가 보내기 버튼을 눌러보았다. 촘촘하게 해야 할 일정으로 가득했던 카카오톡 대화창에 왼편이 아닌 오른편에 내가 듣고 싶던 그 말이 쓰여 있었다. "일연아, 잘했어. 오늘 너무 잘 해냈어. 대견하다 멋지다 자랑스럽다."


슬프면 울어도 돼. 힘들면 쉬어도 돼. 조금 느려도 돼. 미워해도 괜찮고 화가 나도 괜찮아. 괜찮다. 다 괜찮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그동안 받지 못한 위로가, 공감이, 사랑이 채워질까. 그럼에도 기어이 해보고 싶어서, 아니 실은 내가 받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내가 받아본 적 없는 방법으로 사랑을, 위로를, 응원을 전하려 노력을 해본다. 조금은 서툴게. 그럼에도 애쓰면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셨나요? 저는 한동안 이 드라마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데요. 특히나 관식이가 어린 금명에게 해주는 대사를 들을 때 펑펑 울어버렸답니다. 어린 금명이 체육대회를 앞두고 있는 날 관식은 어린 금명에게 이렇게 말하죠. "아니다 싶으면 빠꾸. 수틀리면 빠꾸. 뒤에 아빠 있다." 그리고 금명이 결혼을 하는 날 신부 입장을 앞두고 있는 금명이에게 다시 이렇게 말해요. "수틀리면 빠꾸. 아빠한테 냅다 뛰어와 알지? 아빠 여기 서 있을게."


사람은 자신이 받아본 방법으로 사랑을 전한다고 해요. 못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이런 전적인 사랑을 많이 받아보지 못했던 저는 관식이의 금명이를 향한 무조건 적인 지지와 사랑을 보며 참 많이 울었어요. 이 말이 필요했던 순간의 제가 떠올랐고, 그 말을 저에게 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내가 무얼 해도 그래도 괜찮다. 나는 전적으로 사랑받고 받아들여진다는 감각. 저는 이 감각을 꽤나 긴 시간 동안 밖에서 찾아 헤맸어요. 부모님으로부터,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로부터, 연인들로부터. 하지만 타인으로부터는 쉽사리 이런 전적인 지지와 사랑을 얻을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채로 내가 받고 싶었던, 그런데 받지 못했던 사랑을 주려고 하니 자꾸만 얼어붙었어요. 그래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격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이건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 아닌데. 나는 누구보다 엄격한 감독관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다 우선 나를 채워보기로 했어요. 내가 받고 싶었던 그 사랑을, 그 응원의 말을 내가 나에게 해주기로요.


당신은 언제나 전적으로 당신의 편이 되어주고 있나요. 이 세상이 참 살기 쉽지 않잖아요. 나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혹독한 시선들이 참 많아요. 그런 세상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나에게 나만큼은 온전히 편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내 안에 사랑이 쌓이면 계속 쌓이다 넘치고 흘러 누군가에게로 흘려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조금 서툴러도, 못나도, 부족해도, 실수해도.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와도, 화나는 마음이 올라와도 괜찮아요. 나만큼은 나에게 괜찮다고 해주는 건 어떨까요. 힘들었구나, 속상했구나, 슬펐구나.


당신이 어떠해도 전적으로 당신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거예요. 그런 당신에게 저도 이 말을 전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전적으로 사랑하기로 애써주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