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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퇴사 이야기

내가 나에게 반하는 삶을 살고 싶어.

by 조일연

"나 이번 달 안에 그만둘 거야." 삼사오오 동기들이 모여 앉으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하나둘씩 "야 나도 이번 달에는 꼭 그만둘 거야. 이직해야지."라고 거의 반사적으로 똑같은 대사가 튀어나온다.



실제 주위를 보면 로펌에서 근무하던 동기 변호사들 중 상당수가 진작부터 퇴사를 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일부는 바로 이직을 해서 다른 로펌으로 옮겨가기도 했고, 일부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몇 달간 휴식기간을 가지며 요양을 하기도 했고, 일부는 사내변호사나 공공기관으로 근무지를 옮겨가기도 했다.


나 또한 주위의 퇴사와 이직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흔들렸다. 변호사시험 합격 후 바로 취직을 해서 쉬는 기간 없이 쭈욱 달려왔기에 몸과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고 마음껏 연차를 쓰는 다른 친구들을 볼 때마다 병원에 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닌 내 처지에 조금만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특히나 내가 일하던 로펌 근처에서 근무하며 종종 점심도 같이 먹고 함께 투덜거리곤 하던 동기들이 견디다 못해 퇴사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날에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일하는 상황을 털어놓으면 주위에서는 하나같이 모두가 입을 모아 "야 너 좀 쉬어! 너 쉬어야 돼! 전문직의 가장 큰 장점을 왜 써먹지를 못하니! 조금 쉬고 이직해도 충분히 가능해 일단 쉬어!"라고 말했다. 이렇게 모두가 대동 단결하여 나에게 퇴사와 휴식을 권하자 이제는 버티고 있는 내가 조금은 미련한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정말 약속이나 한 듯 퇴사를 한 동기들이 적당한 기간을 쉰 후 원하는 시기에 다시 일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승이 아닌 퇴사'에 대한 두려움마저 말끔히 사라졌다. 그래 뭐 나라고 안 되겠어?라는 자신감까지 차오르면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사를 미루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그 이유는 내가 지금 힘들고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이 이 일이 나와 맞지 않아서인지 혹은 그저 당연하게 일하기 싫은 것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만약 전자라면 퇴사나 이직을 고민해야겠지만 후자라면 이건 회사를 그만둔다고 될 일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을 고쳐먹어야 될 일일테니까.


그래서 일단은 내 마음이 조금 더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물론 버티는 과정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일을 하면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이 상존 법칙을 굳게 믿는 나로서는 그냥 인간관계도 아닌 사회생활에서 이 정도라면 매우 양호한 것이 아닌가 라는 마음으로 넘어가곤 했고, 조금 더 힘이 드는 날에는 '그래 돈 주고 다니는 학교도 힘든데 돈 받고 다니는 회사가 얼마나 힘들겠냐'라는 명언을 마음에 새기며 꾸역꾸역 넘어갔다.


업무량은 당연히 많았고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저녁식사를 굶으며 운동을 하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야근을 해야 할 때도 많았고, 밥 먹는 시간을 내기 어려워 빵으로 때우며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사건 기록을 미친 듯이 넘기며 꾸역꾸역 빵을 밀어 넣다가 이게 지금 글씨를 먹는 건지 빵을 먹는 건지 모르는 기분으로 일을 하던 즈음 급체를 해서 밤늦게 텅 빈 사무실 바닥에서 굴러도 보고, 법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달려가 모조리 토해내고 법정으로 뛰어들어간 적도 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질 즈음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온몸에 나기도 했고, 위경련이 와서 주저앉아도 보고, 그렇게 회사 근처 병원과 약국을 단골손님처럼 드나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버텼다.


단지 일이 힘들어서 몸이 피로해서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나 스스로를 설득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업무량이 많고 더 늦게까지 야근하는 변호사님들도 많은데 이거 가지고 이렇게 휘청거려서 되겠어?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더 버텨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던 어느 날.


나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멍 해져버렸다. ‘나는 과연 내가 하고있는 이 일을 즐기고 있나?’


나의 솔직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 후로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지켜보기 시작하자 나는 정말이지 딱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것만 아슬아슬하게 해내고 있었다. 일이 펑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딱 그만큼만 아주 아슬아슬하게 말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내 생각을 스스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저 그렇게 일단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않냐며 혹은 지금 크게 문제가 없지 않냐며 현실을 덮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내 내면의 모습을 덮어두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조금씩 용기를 내어 내 자신을 솔직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정말 그 어떤 열정도 의지도 없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만을 하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면서 업무에 펑크를 내면서도 월급을 받고 있다면 문제이겠지만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일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장은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길게 보면 적어도 앞으로 3년 내지 5년은 이렇게 최소한의 일을 하며 일에 펑크만 내지 않고 월급을 받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이건 나쁘지 않았다.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니었고 갈수록 일이 손에 익으면 나의 멍청한 짓도 줄어들 테고 그러면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큰 문제없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문제였다. 그저 그렇게 정말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간신히 최소한의 일을 하며 월급을 받는 것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일까? (오해를 줄이기 위해 첨언하자면 여기에서 '간신히 최소한의 일'이라는 것이 절대 업무량이 적다는 의미는 아님을 밝혀둔다. 절대. 절대 절대.)


이렇게 살아서 내가 과연 3년 후, 5년 후에 이 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나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솔직하게 자신이 없었다.


분명 나는 단순히 월급을 받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원했고, 내 일을 통해서 나만의 전문성을 키워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열정이 생겨나지 않는 상태로 그저 그렇게 최소한의 것만을 하며 간신히 '버티는 삶'은 정말이지 내가 꿈꾸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일이든 나 스스로 즐겁고 열정이 생겨서 '최소한의 것' 이상의 것을 더 해보고 애써보고 그 과정 자체를 '힘들지만 즐기는' 삶을 살고 싶었다. 물론 내가 "힘들지 않고 행복하기만 한"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힘들고 스스로 부족하게 여겨질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고, 그런 사람만이 그 일을 통해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보기에 나는 이대로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침 나는 운동이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변호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들을 만나면서 나의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원하는 목표까지 도달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일을 어느 정도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은 날이 있다. 필라테스 지도자과정을 지도해주신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듣던 날이었다. 누군가 선생님에게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세요? 원하는 일을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었는데, 그 질문에 선생님은 일초의 고민도 없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고 행복해요.”라고 답하셨다.


그 빛나는 눈빛을 본 순간 나는 멈춰버렸다. 그리고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나는 이 질문에 저렇게 일초의 고민도 없이 빛나는 눈빛으로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한 번 사는 내 인생인데 왜 나는 그렇게 답할 수 없는걸까? 사람이 어떻게 다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사냐고 하지만 분명 그런이들도 있을텐데 왜 나는 그럴 수 없는걸까?


머리가 한 없이 복잡해지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께서 뒤이어 해주신 말씀을 잊을 수 없다.


스스로에게 반할 수 있는 삶을 사세요.


나는 과연 나 스스로에게 반할만한 삶을 살고 있을까? 몇 번을 나에게 물어봐도 답은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 직업이 무엇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직업인지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 지금 이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에게 반할만한가 그리고 5년 후 10년 후 내 모습이 그려지는가.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떳떳해지고 싶었다. 아니 그 선생님처럼 그렇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있게 대답해보고싶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정 정도 이상 성취한 사람들이일을 하면서 늘 행복하고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그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고 힘들고 떼려 치우고 싶은 순간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상쇄하여 정말 지극히 최소한의 정도 이상의 노력을 들이붓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보면서 ‘아 내가 여기서 잠시 멈추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나는 이렇게 뜨뜻 미지근하게 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송무를 계속해야 할지 혹은 내가 꿈꾸던 곳에서 변호사로서 일을 계속해야 할지 좀 더 깊이 고민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 쉬면서 맑은 정신으로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로펌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도무지 맑은 정신일 때가 없는 상태로 그저 그렇게 채용공고를 쭉 훑어내려가다가 아무 곳에나 닥치는 대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뿌리고 그중에 불러주는 곳에 덜컥 가서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 나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았다.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변호사로 일하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뛰고 내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노력 이상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지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드디어 나는 미루고 미루던 퇴사를 결정했다.




내가 드디어 퇴사를 결정했다는 소식에 주위 사람들은 나보다 더 기뻐하며(이건 참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마치 자신들이 하지 못 한 퇴사를 나를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것처럼 앞다투어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계획을 세워주었다. "어디로 여행 갈 거야? 이럴 때 유럽을 가야지! 한달살이 하고 와! 무조건 멀리가 멀리!!" 마치 내가 우리나라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모두가 해외여행 계획을 세워주면서 퇴사 라이프를 즐기라고 하며 축배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소중하고 귀한 퇴사 라이프를 "잘" 보내고 싶었다. 내가 왜 퇴사를 결정했고 무엇을 위해 퇴사를 결정했는지 잊지 않고 싶었고, 하루라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퇴사 이후에 할 일들을 리스트로 적어 내려가며 퇴사 이후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기로 나 스스로와 약속했다. 적어도 내가 단지 일이 힘들어서 도망가는 것은 아니라고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흘러 드디어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날. 도비가 양말을 받는 그 날이 되었다.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매일같이 출근하던 사무실에서 내 짐을 정리해서 텅 빈 내 방을 뒤로하고 나오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바라던 순간이었고 짐을 하나 둘 정리하면서 깨끗해져 가는 내 책상을 볼 때 그렇게 기뻤건만 퇴사의 마지막 순간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내 예상대로라면 퇴사일에는 사노비 해방일이라며 친구들과 축배를 들고 세상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일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마지막 짐을 싸서 사무실을 나오던 날 나는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펑펑 울었다.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그곳에서 힘들게 버텼던 순간들이 영화 필름처럼 눈 앞에 지나갔다. 그렇게 다시는 이 곳에 올 일이 없을 거라는 아쉬움과 정든 이들을 못 볼 생각에 안타까움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고생한 내가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남들이 보기에 어떠하든 적어도 내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냈으니까.


하지만 한 편으로는 두려웠다. 단순히 "일이 하기 싫어서" 쉬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내가 어떻게 살지 치열하게 고민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기에 오히려 잠을 좀 덜 자고 더 바쁘게 뛰어다니더라도 '주어진 일을 하면 되는' 삶을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부담감과 공포가 밀려왔다. 확실히 그 날 흘린 눈물에는 나는 과연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 내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두려움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저질러진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언젠가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인것을.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겪는 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알기에 나는 그렇게 내가 갈 길을 놓고 치열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이번 고민의 끝에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어느 곳에서 일을 시작하든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분명 쉬운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최소한의 것 이상으로 열정을 쏟아부어보기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달려드는 일일 테니까.




그렇게 잠시 동안 공식적으로는 '휴식기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마음속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자아성찰'의 기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퇴사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


나는 긴 고민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로 남기로 결정했고 이번에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곳에서 일을 시작해보기로 결정했다. 굉장히 새로운 일이라도 시작할 것 같은 포부로 퇴사를 했음에도 결국 변호사로 일하기로 했다는것이 안타까운 결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결정을 내린 내 마음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저 로스쿨에 합격을 해서, 다행히도 변호사시험에 합격을 해서 그리고 운 좋게 로펌에 취직이 되어서 그저 그렇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내가 원해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가는 이상 분명 이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수 있고 이것도 아닌가 싶은 생각이 또 들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쩌면 '아 나의 숭고한 고민의 시간들은 전부 헛된 것이고 난 그저 노는 게 체질에 맞는 인간이었던가.'라고 허망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가게 된 길과 내가 고민을 한 후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가게 된 길은 조금은 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런 고민의 시간을 좀 더 늦지 않게 가져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부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선택의 기로에서 '모두가 가는 길' 혹은 '그저 흘러가다 보니 가게 된 길'이 아닌 '내가 선택해서 가는 길'을 가게 되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것 이상의 열정을 끌어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저 퇴사가 모든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왜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지' 충분히 고민해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퇴사 후에는 예상치 못 했던 많은 고민과 불안함이 찾아올 수 있기에 이러한 불안함이 다가왔을 때 충분히 단단한 마음으로 나의 미래를 고민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결정을 하기를 바란다.


한편 만약 불안함 때문에 지금 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해야할 고민의 시기를 막연하게 미루고만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즈음 용기를 내어 내가 가려는 길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솔직한 내 마음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분명 그렇게 가는 길은 힘들지라도 내가 더 성장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내가 충만하게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부디 내 앞길도 그러하기를 바라며, 내일의 나를 그리고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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