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문제를 질문할 때

by 안승준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늘 새롭게 알아야 하는 것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방정식에 익숙해지려고 하면 함수의 그래프가 나오고 적응 좀 하려고 하면 집합이 나오고 수열이 나오고 미적분이 나온다. 알고 보면 하나로 연결된 개념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사의 입장이고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겐 낯선 기호들과 맞물려 반복적인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수업시간마다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질문도 그래서 "이건 또 어떻게 하는 거예요?"이다.

교사인 내 입장에서는 "이건 절대 어렵지 않아요."를 반복하지만 그 말을 믿어주는 제자도 내 말을 믿어주리라는 나의 기대도 현실적으로는 그 수치가 제로에 가깝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어떤 모양으로 하는가에 따라서는 설명하는 나의 마음가짐 도공 부하는 학생의 습득 정도나 속도에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자발적 뇌 운동을 최대한 멈추고 선생님에게 최대한 의지하겠다는 구조신호를 보내는 학생들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는 것이야 교사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고 내게 있어서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최대한의 꼼꼼함으로 응답신호를 보내지만 특별한 삶의 의지가 없는 이를 구조해 내는 것은 구조사에게도 흥이 나지 않는 일일뿐더러 구조된 이의 자생력이 생길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반면에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충만한 학생들은 교사의 도움을 요청하기는 하지만 최대한 자발적 의지와 해결 지분을 높여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스스로 충분히 납득될 만큼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의문을 재기한다.

"선생님! 이게 왜 그렇게 되는 건지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제가 다시 한번 해 볼게요. 답은 말씀하시지 마셔요."는 그런 녀석들의 단골 맨트이다.

질문 많고 의문 많은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서는 진정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진하게 느끼는 보람 넘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럴 땐 교사 된 입장에서도 흥이 나지만 그렇게 다져진 지식은 배우는 입장에서도 오래도록 정확히 각인된다.

남들과 다른 모양으로 사는 나는 많은 순간 새로운 수학 단원을 마주하는 아이들과 같은 상태를 경험하곤 한다.

'이건 또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 문제는 답이 있기는 한 걸까?'

정류장과는 동떨어진 곳에 서 있는 버스를 탈 때도, 점원 대신 놓인 키오스크를 마주할 때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들의 업데이트 버전을 마주할 때도 처음 보는 수학 기호를 만난 학생들처럼 머리가 멍 해지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그리곤 교사의 가르침을 청하는 학생처럼 내게 풀이 방법을 제시해 줄 어디인가를 찾는다.

인터넷에 글을 쓰기도 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정식으로 민원신청을 넣기도 한다.

충분히 경험하고 차분히 고민하고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할 때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막막함은 평정심을 잃고 불평만 쏟아내는 투덜이를 만들기도 한다.

처음 접해 본 유형의 수학 문제를 다음번에 쉽게 풀어낼 수 있으려면 수많은 방법 중 나에게 가장 편리한 풀이과정을 스스로 만들고 익혀야 한다. 내게 가장 편한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만나는 불편함들이 나에게도 편리해질 수 있는 방법 또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어렵다고 교사의 도움만을 구한다면 그 문제는 언제까지나 난제로 남는다.

힘들다고 불평만 하고 있으면 나의 불편함은 영영 장애로 남을 것이다.

1년의 시간이 또 지나가는 지금 교과서의 페이지는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아주 조금 남았지만 지나간 페이지들의 성취는 각자에게 많이도 다르게 남았다.

그것은 낯선 어려움에 대처했던 학생들의 달랐던 모양들과 관련이 깊다.

세상 속에서 내가 가진 불편함 들도 나의 시간과 움직임에 따라 딱 그만큼만 변했을 것이다.

난 오늘도 살아야 하고 내일도 또 아주 많은 날들을 더 살아야 한다.

그것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낯섦과 불편함을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첫 번째 경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질 수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의 같은 경험의 모양은 각자의 대처에 따라 모두 다르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총정리를 하는 오늘의 수학 시간 학생들의 서로 다른 표정들에서 세상을 마주하는 내 삶이 보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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