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때와 벗을 때

by 안승준

시간이 겨울의 한가운데를 향하는 요즘 온도계의 눈금이 내려가는 만큼 사람들이 입은 옷은 가짓수와 두께를 늘려가고 있다. 추위 잘 타지 않는 내 손에도 장갑이 끼워져 있을 정도이니 겨울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외출했다가 실내로 들어올 때 외투와 방한장비를 벗어 놓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겹쳐 입고 더 싸매고 또 덧대어 입어도 겨울이 더워질 리는 없겠지만 새롭게 출시되는 기능 좋은 옷들과 용품들은 우리들의 겨울을 점점 더 살만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다른 이를 흉내내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기도 하면서 우리는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은 경험이 되고 삶의 지혜가 된다.

그런데 그것은 안타깝게도 겨울처럼 추운 날에만 적용할 수 있는 제한적 지식 들일뿐이다. 만약 뜨거운 여름날 쾌적한 삶을 위해 똑같은 방법을 시도한다면 몇 초도 되지 않아 끔찍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몇 겹을 겹쳐 입어도 아무런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은 시원한 소재의 옷들은 요즘 같은 날들을 지내는 우리에겐 아무런 쓸모없는 천조각일 뿐이지만 불과 몇 달 전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엔 지금의 두꺼운 패딩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고 또 그럴 것이다.

끝없이 겹쳐 입는 것도 최대한 벗어놓는 것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날씨들 속에서 절대적인 답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가치는 언제나 진리일 수는 없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도 계속 먹는 것은 먹지 않는 것보다 못하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느껴지는 음식도 그 느낌을 항상 전해주지는 않는다.

운동은 건강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말하지만 적당한 쉼이 답인 순간도 존재한다.

네 번의 다른 계절을 보내고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 요즘 변화무쌍했던 여러 날씨들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경험들과 새로운 만남들 속에서 또 다른 삶을 배웠음을 고백한다.

가르침의 대상이라고만 여겼던 어린 제자에게서 스승을 보기도 했고 도와주고 싶었던 동료에게 큰 신세를 지기도 했다.

내려놓는 순간 얻기도 했고 꼭 쥐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순식간에 놓치기도 했다.

세상에 날들은 고정되지 않고 여러 날씨를 품고 있기에 이삭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는다.

푸르른 녹음과 벌거벗은 나뭇가지는 어느 것이 더 옳지도 않고 어느 것이 더 틀리지도 않다.

그것들은 그때 그 시간에 맞춰서 최선을 다해 변해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항상 부족하지도 않지만 언제나 잘나지도 않았다.

함께 사는 우리가 모두 다른 모습을 가진 것은 우리가 사는 시간들 속에 그만큼의 다른 가치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배워야 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

오늘 내가 옳을 수 있지만 언제나 내가 옳을 수는 없다.

입어야 할 때도 있지만 벗어야 할 때도 있다.

지금까지 지내온 날들과는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는 요즘 내가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사람들과 그만큼의 가치들에게 겸손되이 배움을 청하고 싶다.

겨울에 벌거벗거나 여름에 꽁꽁 싸매는 부끄러운 고집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언제나 다름을 향해 유연하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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