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프던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구급차는 숱하게 타 봤겠지만 대체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상태였고 30여 년이나 지난 터라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자기 판단이 가능한 나이와 멀쩡한 의식상태로 한정하면 사실상 이번의 탑승은 첫 경험이라 말할 수 있겠다. 게다가 이번엔 무려 119였다.
2교시를 마칠 때까지도 여느 날과 다를 것은 없었다. 전조 증상도 없었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아도 그런 일이 벌어질 만한 원인행위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갑자기 어지러웠고 잠시 엎드렸을 뿐인데 그 이후로 상체를 일으킬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도 빙빙 돌 수 있다는 걸 깨달아 갈 때쯤 속까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이러다 말 것 같다고 판단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갔다. '쪽잠이라도 청하면 나아질까'하고 생각했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상태는 눈을 감기 전의 그것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부장님께 SOS 신호를 보냈고 여러 선생님이 달려오셨고 어느 틈에 사이렌이 울렸고 내 몸은 순식간에 응급실 침대에 눕혀졌다.
팔도 다리도 다 멀쩡하고 단지 머리만 어지러울 뿐인데 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얼마 남지 않은 중환자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동은 휠체어로 해야 했고, 한 명 이상의 동행인이 있어야만 그나마도 허락되었다. 링거 바늘이 꽂히고 당 수치, 혈압,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구들이 내 몸 이곳저곳을 번갈아 가며 지나갔다.
나는 119 구급대에 의해 긴급하게 후송된 환자였고 증상으로 볼 때 의심되는 질병은 무려 뇌졸중이었으므로 의료진들의 관심과 조치들은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놀라서 달려오신 어머니 아버지의 걱정들과 최악을 가정한 의사 선생님들의 말씀들이 겹치며 어느 순간엔 나 자신도 혹시 큰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지럼증이 이렇게나 오래 지속되는 건 처음인데 다시 회복되기는 하는 걸까?'
'뭔가 정말 큰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다행히 이틀에 걸친 검사와 진료 결과는 '이상 없음'으로 종결되었고 내게 내려진 유일한 처방은 안정과 휴식이었지만 그것으로 가족들과 주변의 마음마저 안심시킬 수는 없었다. 분명 나아지고 있긴 했지만 난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었고 부모님에게도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그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근심이었다.
새벽 출근길을 마음 놓으시지 못한 부모님의 차량 봉사가 투입되었고, 실려간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출근한 내 수업을 대신해주겠다는 선생님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한걸음을 움직이기 무섭게 부축의 손길들이 다가오고 각자 경험한 좋은 치료법과 실력 있는 의사 선생님의 소개도 줄을 이었다. 혼자 사는 나의 식사와 병의 차도를 걱정하는 메시지와 전화들은 전화기 배터리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열흘 정도가 흐른 지금 정말 다행스럽게도 난 원래의 상태를 완전히 회복하였고 그것은 확신하건대 많은 이들의 걱정과 위로 그리고 응원과 격려 덕분이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내 곁에는 신속하게 119를 불러준 이가 있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께 상황을 보고 드리고 긴급 조퇴에 필요한 행정업무를 대신 처리해 준 이도 있었다.
남은 수업도 완수하지 못한 업무들도 내겐 걱정할 것이 없었다. 처음 얼굴을 마주한 119 대원들의 친절한 대응은 놀란 가운데 마음을 평안히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보이지 않는 나는 병원을 찾고 수속을 진행하기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팔 잡아 주시고 손 내밀어주신 동료 선생님들의 마음은 내 부끄러움을 돌아보게 할 정도로 감사한 감동이었다.
살면서 일어나는 불편한 일들에서 불평의 대상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를 향한다. 판단하게 되고 비난하게 되고 미워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나누고 그것은 내 맘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하는 기준을 만든다. 난 좋은 사람에게도 도움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던 이들에게도 더 큰 마음을 빚을 졌다. 미워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충분히 사랑해주고 있었다.
내겐 감사해야 하고 마음 나눠야 하는 이들이 이미 너무 많았다. 내가 치료해야 했던 건 몸의 병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들이었다. 내가 무사히 근무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하는 동료들 덕분이고 씩씩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든든한 가족들 덕분이다. 언제라도 달려와 주는 119 대원들도 자기 일인 듯 살뜰히 챙겨주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존재도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하는 소중한 것이다.
귀한 것은 가장 가까이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미워할 시간에 조금 더 사랑하고 판단할 시간에 조금 더 이해해야 한다. 힘든 시간과 아픈 시간이 왔을 때 많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말이다. 아프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모두 자신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합니다.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