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등록금 고지서를 보는 내 맘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직접 읽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닌 것도 그랬고 특별한 이유 없이 오르기만 하는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나로서는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청구항목이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점자책 한 권 없는 도서관은 내게 있어 그림의 떡과 같은 장소였고, 스크린리더를 설치할 수 없는 미디어실의 컴퓨터들 또한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지만 내 등록금 고지서엔 다른 친구들과 동일한 금액으로 책정되어서 고지되었다.
따지고 보면 강의와 강의실 사용과 관련한 것 이외에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대학 내에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학생회관도, 이런저런 휴게시설도, 논문검색 권한도, 홈페이지 접근마저도 그랬다.
여러 차례 접근성의 개선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항의 조로 관련 항목에 대한 환불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친절한 목소리로 "내년을 기약해 보자."는 어느 어른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신뢰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니라는 것쯤은 확신할 수 있었다.
3학년쯤 되었을 어느 날 학생처를 방문했을 때, 사무실의 어느 직원분께서는 노트북 한 대와 MP3 녹음기를 대여해 주시며 장애인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것이니 잘 쓰라는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새 기기를 받아든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친구 녀석들도 있었지만 난 여전히 그 친구들에 비해 특별히 나은 서비스를 받고 있지 않았다. 장애 편의시설과 관련한 낮은 학교평가 덕분으로 조금의 서비스가 마련되었을 뿐 그 컴퓨터엔 스크린리더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MP3플레이어도 액정을 보지 않고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기종이었다. 나름 하고 있는 노력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내게 말해야 했던 건 '장애인을 위해' 보다는 '그동안의 불편함을 사과드리며…' 쪽이어야 했다.
얼마 후 "장애인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약간의 등록금이 지원되었지만, 그 또한 내가 느끼기엔 장학금이라는 이름보다 "불편한 서비스로 인한 등록금 일부 환불"이 더 어울렸다. 그것들을 마냥 그 명목으로 기쁘게 받아들이기엔 내 학교생활엔 여전히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존재했고 그동안 끊임없이 힘든 학교생활을 한 선배님들에게도 앞으로도 쾌적하지 못한 생활이 예상되는 후배들에게도 면이 서지 않았다.
얼마 전 어느 대기업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와 관련한 자문을 의뢰받았다. 점자를 삽입하고, 음성을 추가하고 접근성이 보장된 앱을 만드는 등의 일은 환영할 만한 것이 분명했다. 장애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수정해야 할 구체적 항목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스스로 경험한 좋은 서비스들과 내가 바라는 이상적 모델에 대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자문했다. 그리고 리서치를 마무리할 무렵 한 마디를 덧붙였다.
"혹시 '시각장애인을 위한'이란 모토를 거두시고 '그동안 배려하지 못했던 고객들에게 사과드립니다.'로 카피 문구를 바꾸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난 이미 그 회사의 제품들을 이용하고 있었고 그 지급의 액수는 다른 고객들과 동일했지만, 활용 가능한 서비스의 양은 상대적으로 너무도 적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추가해 주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그런 서비스가 추가된다고 하여도 내가 누릴 혜택은 눈 보이는 이들의 그것에 비해 같거나 적을 것이다.
같은 한 명의 고객이었지만 다른 고객들에 비해 부족하게 배려한 부분들에 대해 앞으로의 더 나은 서비스를 약속하며 그간을 사과하는 카피 문구는 어떨까?하는 것이 나의 제안이었다. 새로운 접근이라며 회사 분들은 깊게 고민해 보겠다고 응답하셨다.
공공기관도 기업들도 '시각장애인을 위한'을 모토로 여러 가지 서비스를 내놓는다. 그것이 분명 이전의 것들에 비해 시각장애인을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해 주는 서비스인 것은 분명하지만, 새롭게 내놓는 것들이 특별한 것인지 아니면 이전의 것들이 너무도 부족했던 것들인지는 우리가 모두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비율로 세금을 내고 동일한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고 같은 길을 걷는 시민이자 고객으로서 이제는 그간의 불편함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받고 싶다. 100만큼 불편했던 내게 1만큼의 개선을 약속하면서 '장애인을 위한'이라는 모토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