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이하여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1인당 국민소득 1800 달러와 어울리지 않는 5달러짜리 쌀국수는 이름 모를 현지인들의 삶을 시작부터 동정하게 했지만 그들의 삶엔 웃음이 가득했다.
앙스누울 지역의 교사와 지역 리더, 그리고 의사들에 대한 장애인식 개선과 대한민국의 특수교육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나에게 준 역할이었다.
막연하긴 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나라 장애인의 삶이라는 것이 그리 긍정적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영상이 오버랩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제와 차별 혹은 방치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예상대로 학교 안에 장애인은 없었다. 가가호호 방문한 마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재학생 중 한 명도 장애를 가진 아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특수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애인도 교육받아야 합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특수교육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교육받지 못한 장애인들의 삶이 어떠한지 울컥하는 마음으로 불을 뿜었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캄보디아의 현실과 교사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마을의 리더들을 만나 환경적 장애 요소를 제거하고 장애포괄적인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의사들에겐 장애판정을 받은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학교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슬펐지만 간절했고 확신은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마음을 담아야 했다. 한 명의 장애학생에게라도 교육 혜택이 주어지길 바랐다. 그런데 소감과 질문을 나누는 그들의 태도는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따뜻했고 적극적인 수용 의지를 갖추고 있었고 알려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동안 알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는 어른들도 계셨다.
‘쌀이나 빵을 줄 수 있나요?”라는 말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동네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그것을 나눠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었다. 학교에 보내겠다고 약속하는 의사들과 장애아이들을 좀 더 잘 가르칠 방법을 물어오는 교사들, 마을의 장애인들을 걱정하는 리더들의 인식수준은 감성적인 면으로만 보면 나보다도 나았다.
생각해 보면 동네를 돌아다닐 때도 차가운 물 내어주고 의자를 가져다주는 아이들의 장애인식은 부족하다기보다 훌륭한 쪽에 가까웠다. 배제되고 차별하는 문제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고 하는 나라들의 문제였다. 단지 장애인도 교육받고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도 고민해 볼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 그들이 가진 현실의 문제라면 문제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의 장애인들은 더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었다. 국민소득은 낮고 물가수준은 높은 땅에 사는 이들에겐 미소조차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착각처럼 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나눠야 하는 경험들과 문화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모든 면에서 그렇지는 않다. 그들에게도 우리가 놓치고 있는 배울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름은 언제나 그런 것이다. 알지 못하기에 다름이고 다르기에 서로에게 필요하다.
캄보디아의 장애인들도 교육받고 직업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강점으로 그들은 그들의 성공모델을 만들어 가리라 확신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