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 어른들은 오른손을 밥 먹는 손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학교 선생님도 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알려주시는 분은 없었지만, 왼손을 쓰는 것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의 일탈이었고 착한 행동이 아니었고 예쁜 모습이 아니라고 하시기에 난 더 열심히 오른손을 사용했고 왼손을 쓰는 친구들을 이상하고 안쓰럽게 여겼다.
천만다행하게도 난 원래부터 오른손 쓰는 게 편한 어린이였지만 가족 중에 그리고 친구 중엔 왼손이 훨씬 자연스러운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에겐 식사 시간도 양치질 시간도 글씨 쓰는 시간도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익히느라 고역인 듯 보였다.
억지로 교정되는 어린아이들의 오른손 사용이 자유로울 리 없었고 그 결과도 훌륭할 리가 없었기에 오른손잡이인 난 때때로 내 글씨와 숟가락질 따위에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곤 했다. 장난감을 살 때도 악기를 배울 때도 문구류를 이용할 때도 오른손잡이용으로만 생산된 물건들은 왼손잡이 친구들을 더더욱 엄마 말씀 안 듣고 고생하는 아이들로 단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야구를 할 때도 그랬다. 방망이는 어떻게든 반대로 들면 되지만 글러브는 반대로 착용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불편한 동작으로 함께 놀던 친구는 역시나 안타까운 시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친구만 타석에 서면 던지는 내 동작이 어색해지고 안타도 많이 맞았다. 처음부터 그 아이가 운동을 잘하던 것일 수 있겠으나 그렇게 여기기엔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 우리의 생각은 왼손 쓰는 아이 때문에 우리가 불편해져서 그런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왼손잡이 친구마저도 그런 상황들을 미안해했다. 우리가 그런 상황 때문에 같이 놀지 않게 되지는 않았지만, 오른손잡이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왼손잡이와 놀아주는 것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키가 몇 뼘쯤 더 자라고 프로야구를 처음 보았을 때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어릴 적 내 친구처럼 왼손을 쓰는 선수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내 친구처럼 야구를 잘했고 어떤 선수는 그런 이유로 일부러 왼손잡이가 되는 훈련을 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 선수들은 글러브를 불편하게 끼고 있지도 않았다.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있다는 것은 그제야 처음 알게 된 것이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의 의미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런 과도한 아량을 베푸는 것이 어릴 적 부모 말 안 듣던 어른들에게 면벌부를 주는 것으로 비추어져 왼손잡이 나쁜 아이들을 늘어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는 왼손잡이 아이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다. 대부분 우리는 뭔가 또 별도의 교육을 받거나 그도 아니면 혼이 날 것이라는 예상을 했기에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다. 그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었겠으나 손을 드는 몇몇 친구들은 쭈뼛쭈뼛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은 손든 아이들의 자리를 이리저리로 바꿔주시고 그 정보는 체육 시간 줄을 서거나 팀으로 운동을 할 때도 사용하시는 듯 보였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덕분으로 우리는 점심을 먹을 때 옆자리의 친구와 팔을 부딪치지 않아도 되었고 팀을 짜서 운동할 때도 서로 불편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의 존재는 자리 배치의 변경 하나만으로 우리 전체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들을 종종 만들었던 것 같다. 왼손을 사용하는 타자나 투수들처럼 말이다.
선생님은 "왼손잡이는 나쁜 게 아니야"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한 적은 없으셨지만, 그때쯤부터 오른손과 왼손에 대한 내 생각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왼손 사용이 더 유리한 상황은 야구 말고도 여러 곳에 존재했고 그들의 왼손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있긴 했지만 그건 정도의 차이일 뿐 오른손잡이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손잡이로 사는 것이 여러모로 더 편하긴 했지만 그건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다수를 차지하는 오른손잡이들의 일방적인 설계들로 인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꽤 많은 책을 보았지만 어릴 적 어른들이 말씀하신 왼손잡이에 대한 부정적 결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문장들은 결국 보지 못했다. 그보다 조금 더 경험을 늘린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어른들도 그 전 어른들에게 또 그 어른들도 그전 어른들에게 들었던 것을 전하고 전해서 그렇게 내게까지 전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소수까지 모두 만족시킬 수 없을 만큼 넉넉하지 않았던 옛날 어느 날엔 모두가 같은 손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했을 것이고 그런 이유로 왼손잡이는 좋지 않은 것이라는 그럴듯한 말들을 전하고 그것은 특별한 비판이나 교정 없이 내게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문화가 되었고 국민 중 단 2%만이 왼손을 주로 사용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10%를 넘나드는 다른 나라들의 왼손잡이 비율 또한 그 나라의 문화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어느 것이 정확한 자연적 왼손잡이 발생률인 줄은 알 수 없겠으나 우리나라의 통계는 왼손 탄압의 역사로 인위적으로 축소된 것인 것은 분명하다.
분명 우연이겠지만 이 비율축소의 경향성은 등록장애인의 비율지표와도 매우 유사해 보여서 난 장애인과 관련한 인식이 이와 매우 흡사한 기전으로 뒤틀어져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왼손잡이 정도의 작은 차이들과 눈 안 보이는 내 장애를 혹은 휠체어 타는 이들의 불편함을 비교하는 것은 억지라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소수가 가지는 어려움은 그 정도가 가지는 객관적 수치보다는 당사자가 체감하는 소외의 주관이 더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내 어릴 적 왼손잡이 친구들이 겪어낸 약자성은 현재 장애인들의 그것과 충분히 비견할 만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왼손잡이가 그러하듯 난 장애 또한 환경적 획일성이 만들어낸 소수 약자의 불편함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와 함께하는 배려와 동정의 꼬리표 또한 그 이기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대에 걸쳐서 만들어 낸 다수의 합리화를 위한 문화 형성이었을 것이다. 왼손을 쓰는 아이들을 말 안 듣고 고집부리는 나쁜 아이로 단정 지었던 것처럼 말이다.
8월 13일은 왼손잡이의 날이다. 여전히 그들은 다수가 아니기에 내가 모르는 불편함이 크겠지만 우리는 왼손과 왼발을 사용하기에 더 멋진 사람들을 충분히 보아왔고 조금 다름이 가지는 가치에 동의했다. 야구경기장에 지팡이를 든 타자나 휠체어를 탄 투수가 등장하고 그것이 경기에서 더 유리하기에 훈련을 통해 지팡이를 짚고 휠체어를 타는 이가 등장하는 것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화장실 휴지가 양쪽 벽에 걸리고 왼손잡이용 글러브를 만드는 크지 않은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팡이를 짚은 사람도 휠체어를 타는 이들도 장애나 불편함이 아닌 작은 다름으로 불리는 것도 그런 작은 움직임으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출판물을 점자책으로 만들지 못하거나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지 못할 만큼 어렵지는 않다.
터치 형태의 키오스크도 높은 턱들도 우리가 수정하려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 모두를 포용하는 착한 기술로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다. 왼손잡이가 그런 것처럼 장애도 그저 작은 다름일 뿐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특별함 혹은 장점으로 여겨지느냐 아니면 불편함과 어려움의 상징이 되느냐는 우리 모두의 생각을 바꾸는 것에 달려있다.
우리 생각 속에 존재하는 부정적 존재들이 그 존재의 소수성으로 인한 인위적 낙인이 아닌지 모든 다름의 인식 정상화를 위해 더 많은 고민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