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약속 시간에 조금 일찍 도착하는 것을 좋아한다. 11시 약속이라면 10시 40분이나 10시 30분쯤을 목표로 해서 출발시간을 정한다. 학교에 출근할 때도 기차를 탈 때도 사람을 만날 때에도 먼저 도착하는 빠름을 선호한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고 지각하는 것보다는 너무 이르게 도착하는 편이 낫다. 서류를 낼 때도 접수 기간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라면 난 월요일에 내는 것이 마음 편하다. 사실 더 일찍 낼 수만 있다면 그 전주 금요일이나 목요일에 내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꼭 나 같지는 않다. 11시 약속이면 11시 5분 정도까지만 가면 되고 특별히 바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계단을 힘들게 오르기보다는 엘리베이터의 긴 줄을 감수하는 편을 택한다. 쓸데없이 오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조금쯤 늦는 편이 낫고 서류 마감이 금요일이라면 굳이 목요일에 내는 것은 헛된 에너지 소모이거나 조급함이라고 여긴다.
서두르는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여유 있는 사람은 또 그런 사람대로 끼리끼리 살아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주변엔 느림과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난 30분쯤 일찍 도착한 약속 장소에서 10분쯤 늦게 도착한 사람을 기다리느라 40분 정도를 기다리기도 하고 1분이면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을 친구와 함께 가느라 몇 배의 시간을 줄을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기도 한다.
나와 같은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난 30분 정도 일찍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40분 일찍 온 상대에게 미안함을 표현하고 다음번엔 그보다 더 이른 시간의 도착을 위해 서두른다. 그러다 보면 어떤 경우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쯤 더 이른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느림과 여유를 즐기는 이들도 내게 그런 미안함을 느끼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괜스레 일찍 오는 나로 인해 조금만 늦어도 큰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 내심 나를 향한 불만이었다. 분명 그들 입장에서는 5분을 늦었을 뿐인데 35분이나 늦은 사람처럼 미안해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조금이라도 자신을 서두르게 만드는 그 행위는 예의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끼리의 만남에선 반대로 늦어도 같이 늦은 이로 인해 늦음이 아니게 되는 미담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한 시간쯤 더 늦은 시간에 만나도 전혀 미안하지 않은 상황들도 생기는 듯했다. 일찍 도착하고 서두르며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이라고 여겼지만 여유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다른 이의 그런 움직임조차 부담이었고 때로는 어리석음으로 느껴지기도 했던가보다. 실제로 나에게서 제출된 이른 시간의 서류들은 내 동료를 상대적 게으름뱅이로 만들기도 했고 약속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나의 서두름이 정시에 도착한 이들을 느림보로 느껴지게 하기도 했다.
빠른 이들은 빠른 이들끼리 느린 이들은 느린 이들끼리만 어울리고 살아가면 좋겠지만 우리는 여러 관계로 인해 얽히고설켜서 한데 뭉쳐 살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도 직장의 동료도 그 밖의 많은 지인도 나와 다른 성향들을 가지고 있는 이가 너무 많다.
정시에 도착하고 적당히 서두르고 적당히 여유 있는 이가 존재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겠지만 내 주변에 그런 이는 없다. 느림과 빠름이라는 것이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닌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정확히 약속 시간을 지켰다 하더라도 서두름쟁이의 입장에서는 느림으로 비춰질 것이고 느림쟁이의 입장에서는 서두름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고 관계함에 있어서 성향의 다름은 적잖이 힘든 일이지만 더 어려운 것은 그 본성이라는 것이 쉽게 바뀌거나 타협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그것은 상사의 명령에도 사랑하는 이의 속삭임으로도 잘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나와 다른 이의 속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다. 난 30분 일찍 도착했어도 5분 늦은 이보다 1분 정도 일찍 도착한 척 할 수 있어야 하고 35분간의 시간을 자신의 즐김으로 채워갈 수 있어야 한다. 같이 가는 이가 조금 느리게 느껴지더라도 조급해하는 맘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상대에게도 내 급한 마음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변할 수 없다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서로를 만나는 것은 빠르고 느린 것 같은 한 가지 성향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