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by 안승준

등산을 하고 오셨는지 여러 명의 어르신들이 한꺼번에 지하철에 오르신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높은 톤과 큰 목소리 간간이 터지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보아 오늘의 모임은 꽤나 즐거우셨던 듯하다.

두서너 역이나 지났을까? 일행 중 한 분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방송이 좀 이상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여기가 미아역일 리가 없는데!!"

듣고 반응하는 다른 어르신들의 생각도 처음 말씀하신 분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듯 같은 의구심을 담은 말씀들을 반복하신다.

"그래 여기가 미아역일 리가 없지."

"요즘 방송을 저렇게 잘못하고 하더라니까!"

그렇지만 내가 알기로는 여기는 분명 미아역이고 안내방송은 지금 순간만큼은 매우 정확한 타이밍에 틀리지 않은 정보만을 말해줬다.

몇 분간을 틀리지 않은 방송에 대한 틀림을 논하시던 한 무리의 어르신들은 미아역의 문이 닫히는 순간쯤이 되어서야 본인들의 판단이 매우 잘못되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보였다.

어르신들의 대화 사이에 몇 분의 다른 승객들이 여기는 미아역이 맞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려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이미 집단의 지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똘똘 뭉친 그분들에게 그런 말들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무리는 원래 건너편 철로에서 반대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만 했다. 등산을 마친 그들은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길을 찾는데에 그다지 큰 에너지를 쏟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앞서가는 어떤 이의 뒤를 쫓으면서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했을 것이고 그 판단에 대한 비판적 사고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로 전원이 지하철을 반대로 타는 실수를 저질렀고 모두가 동시에 그런 판단을 했다는 것을 다른 승객들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순간 무리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누구 때문에 이런 오류가 발생했는지, 그로 인해 집단에 발생한 손해의 시간이 얼마인지, 옳은 방송을 틀렸다고 단정한 때문에 추가로 발생된 손해가 얼마인지 서로를 원망하는 소리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그들을 채우던 기쁨의 에너지는 그 크기만큼 짜증과 불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마치 싸움이라도 벌어질 것 같던 그 순간에 한 어르신이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늦어지긴 했는데 이런 걸로 짜증 낼 것 까지는 없잖아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얼른 내려서 기분 좋게 돌아가 봅시다."

누구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인지 투덜거리던 그들의 불평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유 가득한 할아버지의 말씀으로 한 순간 그들은 조용해졌다. 지하철을 잘못 탄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었고 이제라도 내려서 목적지를 향하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기분 좋게 그 일을 수행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 불평을 내뱉은 들 나아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길어진 귀갓길마저도 즐거운 여행길의 연장이라고 느끼는 것이 오늘의 모든 일정들을 좋은 기억들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원치 않았던 불편한 상황들을 마주하곤 한다. 밤새 정리한 워드 문서를 한 순간에 날려버리기도 하고 아끼던 컵을 깨뜨리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몸을 다치기도 한다.

그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상황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그 순간 스스로에게 최선이 될 수 있는 다음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더욱 짜증을 내시다가 다투는 것보다는 억지웃음이라도 껄껄 웃으면서 제대로 된 열차를 타는 편이 나았고 날아간 문서를 원망하던 이는 그 순간 평정심을 찾아 새로운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낫다.

깨진 컵도 벌어진 상처도 되돌릴 수 없다면 빠르게 정리하거나 치료하는 편이 낫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이 그 순간에는 사람이기에 어려울 뿐이다.

장애라는 것도 그보다 더 힘든 일도 지하철 하나를 잘못 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되돌릴 수 없다면 그다음 최선을 찾고 웃어야 한다.

이미 떠나버린 지하철을 되돌리려고 하는 것은 즐거웠던 하루 일정을 모두 망쳐버리는 일이었던 것처럼 삶에서 마주치는 힘든 일들에 너무 오랜 시간 불평을 쏟아내는 것은 삶 전체를 힘들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짜증내고 불평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조금 큰 마음으로 여유 있게 웃으면서 다음 즐거움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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