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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Oct 04. 2022

식판의 비밀

  우리 학교 식당 점심은 언제나 맛있다. 월요일도 맛있고, 화요일도 맛있고, 금요일도 맛있다. 혼자 차려 먹는 밥에 익숙한 나의 최근 10년을 돌아보면 하루 세끼 중 점심이 가장 충실한 영양공급 시간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고기 반찬도 야채 반찬도 국도 밥도 간식까지 훌륭한 우리 학교의 점심시간에 나를 가장 아쉽게 하는 것은 반찬의 양이다. 나름 아껴 먹고 조절한다고 하는데도 늘 밥은 한참 남았는데 반찬 칸에서는 어느새 식판과 젓가락 부딪히는 땡그랑 소리가 난다. 


  자율배식이긴 하지만 시각장애 있는 나의 밥은 언제나 조리사 선생님이 배식해 주시는데 '왜 매번 반찬은 이렇게 적게 떠 주는 걸까?'하는 아쉬움을 가지곤 한다. 마침 동료 선생님이나 조리사 선생님이 지나시다 내 상황을 보기라도 하시면 다행이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꾸역꾸역 맨밥을 밀어 넣어야 한다. 


  물론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사건은 그리 흔하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어서 누군가 발견하고 반찬 칸을 다시 채워주는 과정이 대체로 반복되기는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한 번에 적당량의 반찬을 주시지 않는 걸까?'하는 의문은 머릿속을 그때마다 맴돈다. 


  학교에서 접하는 반찬 중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동그란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다. 길쭉한 모양의 그것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작은 공처럼 동그란 그것은 마트에서 찾아보기도 힘들고 그에 비해 맛있기는 너무 맛있다.


  찾아보고 주문해 보고 또 검색하고 다시 구매해 봐도 완벽히 똑같은 것을 구할 수 없던 나는 며칠 전 친구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오늘의 메뉴"에 비엔나소시지가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바로 친구에게 전송했다. '이제는 드디어 정확한 그 소시지의 정체를 알겠구나!'하고 답장을 기다리는데 알림음과 함께 온 메시지의 내용은 질문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우와! 밥이 진짜 많네.“


  바로 그것이었다. 내 식판은 반찬이 적은 것이 아니었다. 대식가인 나를 배려해서 최대한 많은 양의 밥을 떠 주신 것이었다. 반찬도 물론 최선을 다해 담으셨지만, 밥과는 달리 쌓아 담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최대치를 담고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담아주는 방법을 택하셨던 것이다. 


  반찬이 빨리 없어진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나머지 내게 주어진 많은 양의 밥에 감사하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지냈다. 충분히 담아주시고 다시 한번 가져다주시는 수고로움은 약간의 불편함에 묻혀 당연한 것이 되었고 내게 남은 것은 아쉬움과 의문뿐이었다.


  나 같은 대식가가 10년 이상을 맛있게 점심을 먹는 것은 드러내지 않는 많은 손길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부르고 맛있게 먹는 것이 당연해지기까지 나는 너무나 많은 감사함을 익숙함이란 이름으로 놓치고 살았다. 작은 아쉬움이 내게 긴 시간 크게 느껴졌던 것은 나의 익숙한 편안함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내 몸에 생긴 작은 상처가 유난히 아프다면 그동안 너무도 건강하게 안전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고 오늘 겪은 슬픈 일에 유난히 많은 눈물이 쏟아진다면 그동안 웃음 속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 아쉽다면, 무언가 불편하다면 그 뒤에 감춰진 감사함을 찾아보자. 반찬이 적게 느껴졌던 식판의 비밀은 가득 담긴 밥에 있었다. 오늘 무언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함을 느낀다면 그 비밀은 그동안의 편안한 삶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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