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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Dec 19. 2022

첫날부터 즐기길

(사진 출처:pexels.com)

  휴대전화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런저런 이유로 모바일 통신이 불안한 지역들이 존재한다. 학생들 데리고 깊은 산속에 있는 캠핑장이라도 가면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전화기 붙들고 전파가 잘 터지는 곳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곤 한다. 동영상도 뉴스도 볼 수 없고 게임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불편한 상황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겐 너무도 힘든 일인가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억할 수 있는 최대로 오래된 과거부터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뽀로로가 화면 가득 튀어나오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에게 원하는 뉴스나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TV 채널을 돌리면서 기다리는 시간은 갑작스레 찾아온 장애와 비견할 만큼 끔찍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의 캠핑은 2박 3일을 예정하고 있고 그 공간에서는 어떤 스마트기기의 통신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은 5분 10분만의 공간탐색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의 정보가 듣고 싶다면 한 줌의 전파를 갈구하는 것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방구석에 놓여있는 TV나 라디오를 이용하는 것이 낫고 따분한 시간을 채우는 것도 멈춰버린 게임 화면을 누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기적을 바라는 것인지 틈만 나면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되풀이한다. 


  네트워크를 초기화하고 종이컵 같은 기구를 이용해서 전파도 증폭시켜 보고 전원도 켰다 껐다 하는 녀석들의 노력은 눈물이 앞이 가릴 정도의 극한 발버둥이다. 산책도 하고 넓은 운동장에서 뛰기도 하는 다른 녀석들을 보면 스마트폰만 쥐고 있는 아이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나 또한 달라진 상황을 쉬이 인정하고 새로움에 적응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기에 그들의 행동 또한 충분히 이해되기는 한다.


  처음 장애라는 것을 선고받은 날부터는 아니었겠지만,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내 시력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력이 회복되면 좋겠다는 희망까지 무너진 것은 아니었지만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채로 남은 삶을 채워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하고 있었다.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얻고 공부를 하고 여가를 즐기는 것들을 찾아야 했지만 내 행동 또한 멈춰버린 스마트폰을 부여잡은 아이들처럼 눈을 감았다 뜨고 또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는 것들에 머물러 있었다. 


  점자를 배우고 소리 나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내가 할 일이었지만 난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도 너무도 익숙했던 내 눈을 되돌리는 것에만 한동안 집중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아는 장애라는 것은 다름이 아닌 불편함이었고 장애인은 조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열등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내 모든 세포가 내 시력의 회복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편리함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했지만 열등함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던 최후의 발악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장애와 비장애가 조금만이라도 동등한 것이라 여겼다면 내 선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긴 시간 동안 뭔가 다른 것을 배울 수도 있었고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쉴 수도 있었다. 먼 곳을 여행할 수도 있었고 학교 공부가 아닌 진정 좋아하는 것을 체험할 수도 있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난 장애를 얻게 된 첫날부터 보이지 않는 세상을 즐길 수 있었지만, 장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비장애로 돌아가려는 헛된 수고로 보내버렸다. 스마트폰만 부여잡고 있던 아이들은 캠핑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숲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된다. 도시와는 다른 풍경들과 냄새들 즐길 거리에 호기심을 느끼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그 녀석들에겐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숲 생활은 도시 생활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미개하거나 열등하다 말할 수 없다. 단지 도시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배우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아이들은 캠핑에 오기 전부터 그곳을 알아야 했고 그것이 주는 다른 매력들을 배워야 했다. 그것이 어떤 캠핑장을 가더라도 온전히 즐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모든 사람은 많은 다름이 가진 열등하지 않은 진실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다름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지만, 그 어떤 다른 삶도 다수의 삶보다 열등하다 말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30년 경력 가진 시각장애 전문가로서 감히 말하건대 앞을 볼 수 없는 삶도 충분히 살아볼 만하다. 굳이 노력해서 장애를 얻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당신이 장애를 얻게 된다면 당황하지 말고 즐겨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장애인의 삶이 다소 불편한 것은 그 신체적 장애 때문이 아니라 다름을 가진 이들도 함께 살 수 있는 환경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숲의 길들이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불편한 것이 몸집 작은 아이들의 탓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음 캠핑에서는 모든 아이가 스마트폰 없이도 2박 3일 내내 충분히 즐겁게 놀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장애를 가지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생각들에 속지 말고 시작되는 순간부터 조금 다른 삶을 온전히 즐기기를 바란다.


  당신만은 그 첫날부터 온전히 장애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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