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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May 01. 2023

장애인을 사랑한 것은 아니에요.

©Pexels/좌상단에서 하트가 쏟아져내리고 있다.

가까운 지인 중 한 분이 애지중지하던 고가의 태블릿을 떨어뜨린 적이 있다. 다행히 화면이 깨지거나 기능상 이상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한쪽 귀퉁이엔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게 하는 진한 흔적이 남고 말았다. 움푹 들어간 흠집은 그에게 있어 작지 않은 충격과 슬픔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로 새 물건을 사거나 그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회의내용을 기록하고 음악을 듣고 때로는 그림도 그리면서 불현듯 만져지는 기계의 상처가 그의 마음을 순간순간 움찔거리게 했지만 기기 자체가 주는 편리함은 어느 틈에 그 충격을 크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주는 듯했다. 기분 좋은 어느 날인가는 "이 상처 덕분에 이 태블릿은 어디에서도 똑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나만의 유일한 것이 되었어." 라고 말하며 껄껄 웃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진정으로 그 상처를 사랑한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또 다시 새 기기를 구입하게 되었을 때 일부러 그런 흔적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누군가 아무 조건 없이 상처 없는 기기로 바꿔준다고 하면 큰 고민 없이 수락할 것이다. 그는 분명 그 기기를 애정하고 있고 상처는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그 전체에 대한 만족감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부정적 영향의 크기가 크지는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기기의 외형을 원래의 새것처럼 고쳐준다고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완벽히 기능이 다른 새 기계라면 그에게 그 선택은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나와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냐는 것이다. 희생해야 하고, 도와야 하고, 불편해야 하는 삶을 택한 그녀가 이해되지 않거나 선행을 삶으로 실천하기로 결심한 속세 수도자 정도로 여겨지나 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는 시각장애 그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안승준이라도 시각장애가 없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지."라고 말하지도 않거니와 어떤 새로운 의술이 나의 눈을 정상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게 증거이다.

  그녀는 시각장애가 있음에도 나를 택했다고 하는 것이 좀 더 분명하다. 작은 태블릿의 흠집이 어떤 이에게 기기를 바꿀 정도의 치명적 결함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나의 볼 수 없는 상태가 이 남자를 놓쳐도 될 만큼의 큰 불편함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녀는 장애인 아닌 매력적인 한 남자를 택했을 뿐이고 다만 그에게 약간의 다름이 있었지만, 그것이 선택에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뿐이다. "어떻게 장애인을 만나요?"라는 물음은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그 얼굴을 만나요?”라든가 “어떻게 그 집안사람을 만나요?” 정도의 어리석은 질문이다.

  우리는 물건을 고를 때나 사랑을 택할 때도 단점을 먼저 보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지 않는다. ‘내게 필요한 기능을 갖춘 물건인가?’, ‘내가 좋아할 만한 매력을 갖춘 사람인가?’가 선택의 기준이 될 뿐이다. 작은 단점들이 그 선택 과정에서 약간의 고민거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 고객이나 사람이 단점 자체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언니! 형부 되실 분이 정말 잘생겼어요. 외모로 고르셨나 봐요?”, "영상으로 보니 남편 되실 분이 성품도 좋고 목소리도 멋지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 여자친구의 마음을 그나마 이해하는 편에 가깝다. 내 여자친구는 내 장애를 사랑하거나 장애 때문에 나를 택하지 않았다. 희생이나 봉사가 삶의 목적도 아니고 내게 평생 복지를 제공하려 나를 택한 것 또 한 아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처럼 서로의 매력에 끌린 것이고 그 만족의 크기가 장애 따위는 보이지 않을 만큼 컸을 뿐이다. 내 여자친구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매력을 자세히 보길 바란다. 내 매력적인 삶만이 당신을 이해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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