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서서 자는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다리 아프지?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
어릴 적 어디선가 배우고 불렀던 동요 가사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처음 그 노래를 듣고 십 년이고 백 년이고 서서 자야 하는 나무의 처지를 느끼고 눈물마저 글썽거렸던 기억이 난다.
작사가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다른 이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처음의 계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누워서 편안히 잠조차 잘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은 따뜻한 방에서 포근한 이불 덮고 호강하는 내 모습과 교차되면서 더욱 찡한 감정을 만들어 내었었다.
나뭇가지에 손가락 붙이고 줄기 어딘가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눈동자까지 그려 넣은 동화책 보면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던 나의 감정은 초등 수준의 과학교육을 받으면서야 비로소 나무는 눕혀주는 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서 천천히 현실감각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내 중심적인 도움들로 인한 많은 식물들이 고난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주고 싶은 것과 그들이 받고 싶은 것은 꽤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말이다.
음지식물은 햇빛을 싫어한다는 것과 선인장은 매일매일 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그것들이 이 세상과 작별을 한 이후에야 내가 깨달은 바이기는 하지만 내게 있어 다른 이들에 대한 진정한 배려는 그들의 희생을 통해 많은 부분 정제되고 업그레이드되었다.
온전한 시력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 모습은 서서 자는 나무만큼이나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모습인 것 같다.
또렷하게 세상 풍경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게슴츠레한 내 눈빛을 보면 나무에게 누워 잘 수 있는 침대 선물을 고민했던 어린 나처럼 최신 의학과 첨단기술 때로는 각종 종교 활동 통한 시력 회복만이 나를 도와주는 길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20년 넘게 이런 상태로 살아온 나에게 있어 시력 회복을 논하는 것은 나무를 눕히는 고민 하는 것만큼이나 큰 쓸모없는 걱정이기도 하다.
수십 년 수백 년 진화하고 성장하면서 그 모양 그 방식대로 고목이 되어온 나무처럼 나의 삶 또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적의 모양을 만들어 왔다.
당장 눈을 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또한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 되겠지만 현대의 과학기술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 현재의 내 판단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뉴스 기사나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된 최신 의학 정보라는 것을 들고 와서 이번엔 다르다고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만 그 방면에 있어서 가장 많은 고민과 정보탐색을 해 본 사람이 누구겠는가?
내 주변의 수백수천의 시각장애인 친구들도 모르는 개안 정보를 잠깐의 기사로 알아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요즘은 시력과 함께 결혼 못한 내 처지까지 추가되어 인생 조언하려는 사람들마저 많은 수 추가되었다.
결혼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 아이를 몇 살에 낳아야 말년이 편안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서 외울 만큼의 충분한 관련 지식이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고민도 난 당사자로서 충분을 넘어서 넘칠 만큼 하고 있다.
난 독신주의자가 아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바람은 이런저런 자리와 채널을 통해 충분히 말하고 어필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결혼 못 하고 혼자 사는 내 상황은 무언가 알지 못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시력 회복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제일 먼저 찾아보고 현실 가능성을 타진한다.
결혼도 육아도 내게 있어 인생고민에서 적지 않을 만큼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설익은 조언들은 내 시력과 삶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한다.
서서 자는 나무를 내 기준대로 억지로 눕혀 놓는다면 그것을 땔감으로 만들 뿐이다.
나무를 도우려면 그 나무가 어떤 기후를 좋아하는지 어떤 영양분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용히 가문 날씨에는 물을 주고 적당한 시기에 약간의 거름을 주는 것만 하면 된다.
내게도 약간의 걱정과 배려는 에너지가 되고 힘이 된다.
그렇지만 필요 이상의 조언과 본인 중심적인 충고는 쓸데없는 스트레스만을 추가할 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 깊게 고민하고 공부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 큰 어른이 건강한 나무를 억지로 눕혀서 땔감 만드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