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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May 22. 2023

라면 한 젓가락을 나눌 타이밍!

©Pexels/두 사람이 한그릇에 담긴 라면을 나눠먹고 있다.

  오래전 여름 친구들과 섬으로 놀러 갔다가 태풍을 만난 적이 있다. 3박 4일로 예정했던 여행은 어느새 일주일을 넘기고 가지고 있던 양식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돈이 넉넉하게 있지도 않았지만 있다 하더라도 작은 섬 안에 있는 가게엔 이미 팔 물건이 남아있지 않았다.

  몇 봉지 남지 않은 라면 끓는 소리에 우리 모두의 배는 '꼬르륵' 소리를 합창했지만, 누구도 넉넉하게 먹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고 싶고 한 모금 국물이라도 더 떠먹고 싶었지만, 나의 몫이 늘어나는 만큼 곁에 있는 이의 배고픔도 커질 것을 알았기에 잘 익었는지 맛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꼬르륵꼬르륵 뱃속의 아우성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는지 라면 끓이던 친구가 내게 라면 한 그릇을 덜어서 내밀었다. 괜찮다고 다른 친구 먼저 먹으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뱃소리 가장 컸다는 이유로 결국 첫 젓가락질의 기회는 내게 주어졌다.

  입에 넣자마자 후루룩 넘어가는 라면의 맛은 다른 어느 때 먹은 진수성찬과도 비길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뭔가 특별한 레시피라도 있을 것만 같은 그 맛이 가능했던 건 우리의 배가 그만큼 고팠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주린 배 가진 친구들이 그 상황에서 내게 한 그릇의 음식을 먼저 베풀었다는 사실은 그 맛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대단한 감동이었다. 몇 젓가락씩 라면을 덜고 나누고 국물을 떠먹는 시간동안에도 우리의 허기는 크게 달래지지 않았지만 “너 좀 더 먹어. 난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라며 서로에게 건넨 마음들은 깊은 마음속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눌 수 있었다는 건 서로의 깊은 마음을 얻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었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를 때 나눠진 한 모금의 물이나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화장실 줄에서 양보받은 한 칸의 변기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귀하디귀한 나눔의 가치를 알 수 있을까? 여느 때 같았다면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었을 라면 한 젓가락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어마어마한 매개가 되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함께 어려울 때 작은 양보의 용기를 내어보자. 라면 한 젓가락이어도 좋고 물 한 모금이어도 좋고 어쩌면 말 한마디여도 좋다. 당신이 어렵다면 그 어려움이 큰 만큼 작은 마음의 나눔은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모두가 굶어 죽을 듯이 배고프다면 지금이 바로 라면 한 젓가락을 나눌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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