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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Sep 26. 2023

코로나

(사진: 확진을 뜻하는 두 줄이 나타난 코로나 검진 키트)

감기인 줄 알았던 내 몸의 증상들은 말로만 듣던 코로나로 판명되었다. 38도를 오르내리는 열은 해열제를 먹어도 찬물로 씻어도 떨어질 줄을 모르고 목구멍은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올랐다. 건강했던 내가 불과 이틀 정도 만에 잠을 잘 수도 무언가를 먹을 수도 없는 중환자가 되어버렸다.


코로나라는 녀석이 사람마다 겪는 증상도 정말 다양하다 하더니 먼저 겪은 이들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만큼 내 증상도 독특했다. 사실 잠 못 자고 침 삼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조치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긴 했다.


얼음이나 아이스크림을 최대한 작은 크기로 잘라서 조금씩 흡입하고 약간의 나아진 틈이 보이면 온몸의 기력을 끌어모아 고통을 참고 약을 삼켰다. 과일 정도가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그것 또한 먹기 편해서라기보다는 그마저 먹지 않으면 다른 것들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일 중에서도 키위나 사과처럼 산성이 조금이라도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먹을 수 있는 목록에서 추가로 제외되었다. 배고픔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약도 먹지 않는 내가 병원까지 찾았지만, 의사선생님이 해 줄 수 있는 조치도 그다지 특별한 건 없는 듯했다. 열을 내려준다는 약도 통증을 줄여준다는 약도 염증을 해소해 준다는 약마저도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코로나의 기세 앞에서 큰 작용을 일으켜 주지는 못했다.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면 빈속에 들어가서 머릿속을 몽롱하게 만들어 준 것인데 그 틈을 노려서 한두 시간이나마 잠은 들 수 있었다.


언제나 아름답게만 들릴 것 같던 노랫소리도 소음으로 느껴지고 걱정되는 마음에 걸려 오는 전화들도 극도로 예민해진 나에겐 귀찮은 괴롭힘으로 느껴졌다. 조물주가 만약 이 상태로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편안히 끝을 맞이할 것인지를 물어온다면 난 내 삶의 지속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할 것 같을 만큼 한순간 한순간이 견디기 힘든 지옥의 고통으로 느껴졌다.


내 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거의 남지 않으니, 시간은 극도로 느리게 흘렀다. ‘다시 나아질 수 있긴 한 걸까?’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닷새쯤 지나자, 호전의 기미가 보이긴 했다. 여전히 목이 아프긴 했지만, 쌀죽 정도를 삼킬 수 있게 되었다. 맛이 느껴지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뭔가 감격스러웠다. 약을 먹으면 잠시나마 통증이 줄어들기도 했고 덕분에 잠을 잘 수도 있게 되었다. 어느 순간 소금간이 된 죽을 먹어도 통증이 견딜만해졌고 김치도 한 조각 정도는 집어 먹게 되었다.


체온계의 눈금이 37.5도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음악 소리나 드라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정 상태도 회복했다. 사탕을 물고 있으면 기침도 잦아들었고 택시를 이용하면 출근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힘이 빠지긴 했어도 대화 가능한 목소리를 회복했고 일어서지는 못해도 앉아서는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오래 걸을 수 있게도 되고 드디어 음식의 맛을 느끼며 즐거운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엔 별것 아니라고 느끼던 것들이 하나씩 돌아오는 것이 저절로 감사기도를 외칠 만큼 귀한 것으로 느껴졌다. 코로나 감염 열흘 정도가 지나는 지금 난 조금씩 운동을 시작했고 건강 상태도 체력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하고 있다.


심하게 아픈 다음에서야 비로소 느끼지만 내가 가진 일상은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던 평범함이었다. 하루 세 끼를 맛있게 먹는 것도 만나는 이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저녁이 되면 잠을 자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맛있다 느끼고 노랫소리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많이 아프고 많이 답답했던 건 그동안 누리고 있던 것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었다.


난 아직 회복 중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다시 달렸고 내일은 바벨도 좀 들어보려 한다. 조금씩 돌아오는 일상에 대해 좀 진하게 느껴보려 한다. 코로나는 내게 큰 아픔을 주었지만 잠시 잃어버렸던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특별히 불편하지 않은 오늘을 살았다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감사함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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