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을 싫어하는 장애인

by 안승준

요 며칠 사이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특별히 내세울만한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생일인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대한 인사였다.


난 국가에서 인정한 분명한 장애인이다. 그리고 4월 20일은 분명히 장애인의 날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날이 축하받을 날인가를 생각해 보면 마음이 씁쓸하다.


대부분의 기념일은 기쁘게 축하하고 선물도 받고 케이크를 자르고 촛불을 켜는 기분 좋은 날이다.


그것은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적어도 당사자에게는 기분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점 이 땅에서 나의 '실명 기념일'이 축하받고 즐거워해야 하는 날은 확실히 아니다.


교통사고 당한 날이나 암수술을 한 날 혹은 가족의 제삿날에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나 라에 선가는 장례식장에서도 기쁜 노래를 부르고 고인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파티를 한다고도 듣긴 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2019년은 장애로 인해 조금 달라진 삶의 모습이 축하받을 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날에 즈음하여 내게 영문 모를 축하인사를 건네는 것은 습관적인 인사이거나 아니면 다수가 가지고 있는 그 날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장애인의 날'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81년쯤의 '장애'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지금을 사는 이들의 상황과는 꽤나 많이 달랐다.


포털사이트의 옛날 기사 검색이나 영상 공유 사이트를 살펴보면 그즈음의 '장애인의 날' 관련 내용은 어둡고 소외되고 불쌍한 이들에게 신체 건강한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먹을 것을 주고 지팡이를 나눠주고 휠체어를 선물해 주는 것은 그 당시의 표현을 빌리면 정상인들의 아름다운 나눔이었고 하루만의 행복을 선물 받는 것은 불쌍한 불구자들의 몫이었다.


365일 같은 땅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364일을 비장애인 위주로 짜여진 불편한 비장애인 기념일을 지내다가 단 하루를 장애인 기념일로 축하받는 것이 그때의 장애인들이었다.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선물이나 떡을 받아 들고 활짝 웃는 tv 속 장애인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날 축하의 인사를 건넬 수도 있겠다.


난 '장애인의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백번 양보하면 그래도 38년 전 모든 것의 목표가 경제발전이던 그때의 인식과 방식들은 나름 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나도록 그때와 같은 방식의 기념일이 존재한다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후보부터 각종 정치행사 때마다 정치인들은 적절한 복지를 외치고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미래의 가치를 주장한다.


그런데 '장애인의 날' 기념 방송을 보다 보면 이것이 과연 오늘날의 영상인지 81년의 영상인지 헷갈릴 데가 적지 않다.


'장애자'라는 표현이 '장애인'으로 바뀌고 불쌍하다거나 도와줘야 한다거나 하는 표현들이 조금 순화된 것만 빼면 그다지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몇몇의 먹고살만한 장애인들에게 상을 주고 그들의 삶이 불굴의 의지와 오버랩되어 미디어를 도배한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동원된 장애인들의 모습은 격려 인사하러 온 유명 정치인들의 배경화면으로만 존재한다.


어느 복지관이나 특수학교를 방문한 인사들의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장애인의 날 진정한 축하받을 주인공은 장애인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2019년 장애인 복지의 최대 화두는 못 먹는 이들에게 빵을 나누고 돈을 나눠주는 정도의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이 늦긴 했지만 장애 문제에 대해 이제는 조금 더 수준 높은 고민들을 해야 한다.


많은 장애인들이 아직도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의 신체적 장애 때문만은 아니다.


교육받고 취업하고 이동하고 문화를 즐길 때마저도 장애는 동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큰 벽으로 존재한다.


비장애인들은 평범하게 얻어낼 수 있는 것조차 장애인들에겐 불굴의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난 하루의 '장애인의 날'이 존재하는 것은 364일을 왜곡된 인식과 기울어진 불평등을 사는 비장애인을 위로하고 정당화시켜주는 그럴듯한 집단 합리화라고 생각한다.


난 장애인의 날과 그날의 모든 행사를 거부하고 반대한다.


그러나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그날이야말로 평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풀어나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각장애 아이들은 아직도 국가에서 제작해 주는 점자교과서를 받아보지 못한다.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려 하는 지금도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크게 잇슈화 되지 못했다.


장애등급제 폐지나 부양의무제 폐지조차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토론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장애인의 날' 그날이 정말 축하할 수 있는 날이 되려면 먼저 4월 20일이 많은 장애인들에게 진정으로 기분 좋은 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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