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원더우먼, 헐크, 스파이더맨... 한 명만 있어도 세상 모든 위기를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꿔줄 것 같은 시대의 영웅들이 어벤저스라는 이름으로 힘을 합쳤나 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영화관이 한 영화만 상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영화관 좀 다닌다 하는 문화인 자부하는 사람들은 온통 '앤드 게임' 이야기를 나눈다.
맬로 영화 좋아하는 이도 있고 코미디나 액션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예매율 기록을 보고 있으면 이건 뭐 그런 장르 따위는 뛰어넘어서 누가 봐도 최고의 영화인 듯 느껴진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번 천만 단위 관객 끌어모으는 '마블 영화'이니 10여 년 동안 20편 넘는 영화 본 사람만 세계에서 수십억 쯤은 족히 될 듯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난 그 작품들 중 한 편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 했다.
영화 보는 것 꽤나 좋아하고 액션 영화는 더더욱이 관심 많은 나이지만 대한민국의 시각장애인이 할리우드의 액션 영화를 감상한다는 건 적지 않은 추가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허락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 중 하나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해야 하는데 상영시간 내내 울리는 각종 전투들의 스펙터클한 사운드들 사이에서 배우들의 대사를 명확히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은 영어를 잘해도 그냥 잘하는 수준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
한국말은 그런대로 하는 편인 나이지만 국내 영화도 액션 영화는 여타의 화면해설 없이는 알아듣기 힘드니 그것 또한 당연한 일이긴 하겠다.
그래도 어찌어찌 공부 좀 열심히 하고 듣기 훈련 좀 잘해 두면 대사 몇 마디야 알아들을 수는 있겠지만 액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사가 아니라는 데서 한 번 더 문제를 경험한다.
격렬한 싸움들 속에서 적군인지 아군인지 누가 이기는지 조차 구별해 내기 힘든 상황은 설명 좀 잘한다는 동료들에게도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화면해설 영화 제작하는 곳들에서도 이런 류의 외화가 제작되었다는 소문은 잘 들어보지를 못했다.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보장된 영화이면 우선적으로 베리어프리 버전 만들어 줄만도 한데 전문적인 능력 가진 그분들에게도 그건 쉽지 않은 도전이긴 한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쉽게 포기하기엔 이런 류의 블록퍼스터들이 현시대의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이 너무도 크다.
문화면은 물론이고 경제면에도 시사면에도 어떤 날은 방송사의 메인뉴스로 소개되기까지 한다.
원래부터 작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영화관을 찾는 이 들도 많지만 문화적 조류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동참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영화의 스토리는 각자에게 감상이 되고 작은 탁자들 위에서 대화의 소재가 된다.
공동체는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상상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다.
하나의 영화는 사회적 현상이 되고 역사가 되기도 한다.
나의 주장이 과장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10여 년간의 마블 현상은 충분히 그만큼의 영향력이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커다란 사건들 안에서 시각장애 혹은 다른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경계 밖으로 소외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 일지는 몰라도 인간이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사상을 공유하고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감상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문화지체를 경험하고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는데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오래전 내가 실명을 경험했을 때 좌절하였던 것은 1차적으로는 신체 일부의 능력 상실에 관한 것이었지만 또래들과 함께 하던 공동의 문화향유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도 충격 지분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다.
난 드래곤볼을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스트리터파이터 게임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친구들과 물리적으로 다시 만나더라도 함께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는 부분이 너무도 작아져 있었다.
마블에서 만드는 영웅 스토리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진다고 알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하고 만화책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다.
어벤저스는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영웅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도 그들은 같은 의미의 히어로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겐 그렇지 못했다.
기하학적인 규모의 예산으로 만드는 영화 제작에서 소수 약자를 위한 베리어프리 버전을 추가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작은 생각의 전환은 어벤져스를 좀 더 많은 이들의 진정한 영웅으로 만드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마블의 차기작에서는 여성이나 유색인종처럼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했던 사회적 소수들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게 될 것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그 안에 시각장애인 관객들에 대한 고민도 있었으면 좋겠다.
어벤져스! 그들이 진정 모든 이들의 영웅이 되는 날을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