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고등 학생들은 대학에 가려면 교과 공부 외에 기본적으로 쌓아야 할 스펙들이 적지 않다.
봉사활동도 해야 하고 전공과 관련한 실제 경험도 쌓아야 하고 해외연수도 다녀와야 하고 학창 시절 전체적으로 스토리라인도 만들어가야 한다.
많은 부분 사교육으로 감당하지만 어떤 부분은 공교육인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원하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연구하고 노력하는데 올해는 외부의 강사를 초빙한 독서토론 수업을 개설하였다.
어쩌다 보니 수학교사인 나도 업무를 배당받아한 학년의 독서토론 지도교사가 되었다.
이름을 지도교사라고는 하지만 외부 선생님이 오셔서 강의하실 때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멋쩍게 앉아있는 나이 든 학생에게 마음이 쓰이셨는지 선생님은 내게도 교재를 나눠주시고 아이들과 거의 동등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시기로 하신 듯했다.
책을 읽어 왔는지도 묻고 첫 시간 순서인 각자의 장단점 말하기도 예외로 두지 않으셨다.
아이들과 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아 같은 모양의 책상에 같은 교재를 받아 들고 수업에 참여했다.
아이들 쪽이 아닌 칠판과 교탁 쪽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나이가 줄어든 것도 아니고 실제로 학생이 된 것은 더더욱이 아니었지만 약간의 변화들은 의외로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은 느낌을 심어주었다.
모두가 앉아있는 교실에서 홀로 서서 큰 목소리를 내시는 선생님의 힘은 생각보다 강해 보였다.
무언가 질문을 하려고 하실 때면 내 차례인가 싶어서 시선이 돌려지고 아는 것을 시켜도 쭈뼛쭈뼛 목소리가 작아졌다.
처음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내 의도적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꼭 그것 때문 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의 말들을 이끌어 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시는데도 앉아있는 학생의 마음은 그분의 의도만큼 편안해 지기가 힘들었다.
같이 수업하는 옆 학생들을 의식하게 되기도 하고 틀릴까 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정답이 없으니 자신 있게 말하라는 선생님의 말은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뿐인 수업이라 선생님이 던져주시는 작은 과제들은 시간이 넉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난 교단에 선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긴 경력교사가 되었다.
아이들과 그다지 큰 나이차가 나지 않는 젊은 교사라는 명함을 내밀기엔 이젠 내 나이도 적지 않아 졌다.
나이 드는 짧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교단 아래의 학생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어느새 꽤나 멀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 편에서 생각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많은 부분 착각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낮은 책상에 앉아있는 내 마음의 어색한 크기만큼 어린 학생들에 대한 공감능력도 작아진 것이 분명했다.
"틀려도 자신 있게만 말하면 돼!"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조금씩 하면 과제는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냥 편안히 말하면 돼! “하고 말하던 교사인 나의 말들은 그냥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나만의 말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역할도 위치도 되돌릴 수 없는 새로움의 방향으로 변해간다.
20대의 파릇파릇함은 어느새 30대를 넘어 40대에 가까워져 가고 패기 가득한 신입교사는 선배의 숫자와 후배의 숫자가 크게 다르지 않은 중간쯤의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이의 마음은 청소년을 거쳐 어른이 되었고 그 보다 조금 더 나이를 든 더어른이 되기도 했다.
떡볶이 한 그릇에 만두를 넣을까 계란을 넣을까 선택해야 했던 학생의 경제력은 스테이크를 썰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월급쟁이가 되었다.
지나온 시간들은 직접 겪어온 것들이기에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때의 마음들은 적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들은 과거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없는 나의 기억만큼이나 흐려가고 있었다.
분명히 학생의 경험하고 그때를 지나온 교사이지만 그렇다고 학생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교사와 학생은 다른 존재이다.
지나온 시간들이 학생이 교사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내가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을 조금 더 용이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녀석들을 공감하려면 지금의 나도 부단히 노력하고 반복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작은 의자와 책상의 경험은 큰 착각에 빠져있던 나를 크게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서로 모두 다르다.
과거의 언젠가의 경험들이 내가 상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나와 현재의 상대를 같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100%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공감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공감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공감하지 못하는 것보다 나쁘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부단히 그의 위치가 되어보려고 노력하기를 바란다.
독서토론 수업은 올 한 해 동안 내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가 될 것 같다.
작은 의자와 책상에 앉는 것이 온전히 나를 학생의 마음으로 보내줄 수는 없겠지만 오랜 시간 이상하게 다져진 나의 착각들이 되도록 많이 깨어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진중하게 학생 역할을 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