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xels/아이를 사이에 두고 앉은 부부가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내가 마주한 수많은 사건 중 실명의 장면이 특별한 상실로 다가왔던 것은 그 자체가 지닌 의학적 선고가 중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언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내 가족들과 내가 받은 충격은 암이라든지 그보다 더한 치명적 질병에 비해서도 훨씬 대단한 것이었지만 의학적 관점에서 사망에 가까워지는 질병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없다. 적어도 난 생명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치료는 가능했으므로 다른 중환자들에 비해 나의 상실감이 큰 이유는 의사 선생님의 선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평범함과 멀어진 이질적 인간이 되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다른 아이들처럼 놀 수 없게 되었고 친구들이 가는 학교를 갈 수 없었고 또래들만큼 공부하고 성취하기가 힘들어졌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나의 목표는 무의식중에 평범함의 회복이 되었다. "얘는 보이지 않아도 일반 학교 애들만큼 공부를 잘해!"라든가 "언뜻 보면 잘 보는 사람처럼 생겼잖아."가 내게 가장 큰 칭찬이었다. 장애가 없는 친구가 생긴 것이 자랑이었고 비장애인들의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그 경험만으로 뿌듯함이었던 것은 그것이 평범함의 회복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취업에 성공했을 때도 나의 기쁨이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던 부분은 대부분의 비장애인이 가진 평범함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당시의 내가 매 순간 '난 비장애인처럼 살 거야!'를 외친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면 장애 가진 나의 아이덴티티는 평범함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을 수없이 치고 있었다.
내가 끊임없이 평범함을 갈구했던 것은 다른 이들에 비해 보이지 않는 내겐 그것이 많이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수학교에서는 공부 좀 한다는 축에 속해 있었지만, 전국 단위 모의고사 성적은 크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어려웠다. 선생님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평범한 대학생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긴 했지만, 교재를 제작해 준 점역사 선생님들과 많은 순간 내 곁에 있던 동기들 그리고 수많은 좋은 운들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장애는 아무렇지 않은 다름이라고 말하는 비현실적 여성을 만나고 결혼을 한 것도 내겐 기적이고 오늘의 평범함 또한 남들과 다른 어제의 발버둥의 결과이다.
다시 돌아가면 또 오늘만큼 살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 내게 또 하나의 평범한 선물이 주어졌다. 1cm가 겨우 넘는 생명체로 처음 내게 인사하던 날 닮은 녀석이 두 달 뒤면 내게 '아빠'라는 새로운 평범함의 호칭을 달아준다. 많은 이들에겐 그저 남들 다하는 평범한 통과의례일 수 있겠으나 내겐 역시나 엄청난 사건이고 이런 일이 있기까지 아내의 헌신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
오늘도 아내는 내가 보통의 아빠가 될 수 있도록 힘든 몸을 부단히 견디어 내고 있다. 나 또한 또 다른 모양의 평범함을 목표로 또 다른 노력을 시작하는 중이다. 감사하게도 난 무척이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이 평범함이라는 목표를 꾸준히 달성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꽤나 노력해야 하고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특별한 운이 작용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대단한 목표를 이룬 사람이라 치하하고 놀라워한다. 그것은 많이 잘못되었다. 평범함은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어렵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장애가 있든 없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적당히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평범함이어야 한다.
난 내일의 평범함을 위해 오늘 또 달리겠지만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은 어느 누구에나 평범함이 그다지 어려운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실명한다 해도 다리 한쪽을 잃는다 해도 크게 충격받지 않고 조금 다르게 그렇지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