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xels/한 청년이 조언을 구하고 있다.
대학 다닐 때 나에게 있어 복학생 형들은 아주 큰 어른이었다. 군대 이야기도 축구 이야기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 그들은 세상 모든 일에 통달한 것처럼 보였다.
"인생이란 말이야..."라고 입을 열기 시작하면 취업도 연애도 인간관계도 막힘없이 그 해법들을 풀어내 주었다. 형들은 학점을 잘 받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교수님 기분을 맞추는 특별한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술에 취하지 않는 비기도 있는 것 같았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돈도 많았다. 학교의 큰 행사도 그들 몇 명만 있으면 척척 진행되었고 형들만 있으면 밥값도 술값도 걱정이 없었다. 그들은 나에겐 어른이었고 우러름의 대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른도 훨씬 넘긴 어느 날 그 형들이 겨우 나보다 서너 살쯤 나이 많은 스물네다섯 살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던 때, 정말 크게 웃었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들이 말하던 세상 사는 방법들은 아직 덜 익은 풋내나는 그런 것들이었다.
연애의 비기도 술에 취하지 않는 방법도 나보다 한 뼘쯤 많았던 경험들에 근거한 불완전의 표출일 뿐이었다. 서른 아닌 마흔을 넘어도 찾지 못한 세상의 정답을 이십 대 복학생 형들이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난 그들에게 배웠고 그들에게 기댔었고 그들을 믿었고 그건 내 스무 살 무렵을 살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매일 이어지던 술자리에서 숙연하게 경청하던 형들의 철학들은 피식피식 웃음 새어 나오는 어설픈 것들이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난 나보다 몇 살쯤 많은 이들의 조언들에 가장 크게 감명을 받을 것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의 가르침도 필독서에 나오는 성현들의 문장들도 깊은 울림이 있었지만 당장 스무 살을 견뎌내고 한 발짝 내딛는 데에는 몇 걸음 먼저 간 이의 안내가 가장 솔깃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 갓 졸업한 젊은 선생님들이나 교생선생님을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원리일 수 있겠다. 특별한 예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노련하게 갈고 닦아진 경력 교사들의 수업 시간보다 살짝 어색하지만, 풋풋한 새 선생님의 시간을 좋아한다. 철없는 아이들의 미성숙한 판단 오류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학생들이 받아 든 성적을 보면 좋아하는 선생님 시간의 결과가 더 좋다.
어릴 적 어느 설문지에서 자신의 진로 결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또래나 선배라고 답했던 나를 기억해 보아도 그렇고, 부모님 말씀 잘 듣지 않는 녀석들이 친구나 선배들 말에 빠르게 반응하는 모습들을 보면 좋은 가르침이라는 것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 분명하다.
수능시험 앞둔 고3 친구들에겐 갓 졸업한 선배의 격려가 가장 큰 힘이 되고 결혼이나 출산을 앞둔 이들에게도 한두 해 먼저 경험한 이들의 조언이 제일 큰 응원이 된다. 내가 처음 장애와 만났을 때를 생각해 봐도 크게 성공한 먼 어른 것보다는 나보다 조금 더 먼저 장애 가진 형들의 격려가 더 크게 와닿았었다.
꽤 오래전 복학생 형들의 인생 조언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고3 학생들을 격려하러 온 대학 신입생들의 강연을 듣고 있으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스스로 더 잘났다고 착각하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어떤 이들에겐 풋내기 그들의 몇 마디가 훨씬 더 큰 감명이 된다. 칠십 대도 육십 대도 이십 대도 삼십 대도 같이 살아가는 건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말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해서는 아닐까? 작은 경험도 큰 경험도 그 다른 크기만큼 다른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각각 꼭 필요한 위로가 된다.
오래전 연락이 끊어진 그때 그 복학생 형에게 지금 나이에 맞는 인생 조언을 받고 싶은 오늘이다. 오늘 만약 또 어떤 가르침을 받는다면 수십 년 뒤의 나에겐 작은 웃음으로 기억되겠지만 오늘의 나에게만큼은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임을 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가르침이나 제일 훌륭한 조언 같은 것은 없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격려와 위로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