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혜균/범퍼카를 타며 환하게 웃고있는 안승준
이번 휴일엔 애버랜드를 방문했다. 장미축제도 있고 판다 랜드도 있지만 나의 방문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장애인에게 굳게 닫혀있었던 놀이기구 탑승 제한이 진정 풀렸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개장하기 한 시간이나 전에 도착한 입구에서 만세삼창을 불렀다. 장난처럼 시도한 것인데 가슴이 울컥했다.
2008년 제자들의 소풍 때 처음 문제를 제기한 지 16년이 되었다. 그만큼의 시간 동안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반쪽짜리 소풍을 즐겼고, 어린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은 소풍 장소가 내 제자들에게만큼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우선 탑승을 설명해 주는 직원의 안내가 오늘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티켓 할인은 해 주지만 탈 수 있는 어트랙션에 제한이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이해하지만, 규정상 제한할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를 기계처럼 반복하던 직원의 입에서 “네. 모든 놀이기구를 타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말 탈 수 있는 걸까?’ 타기 전까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동안 제한이 걸려있었던 7개의 기구목록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입구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로 예약을 시작했다. 장애인등록을 하면 활성화도 되지 않던 그 예약 버튼이 눌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더블락스핀’의 거대한 몸체가 나를 앞으로 굴리고 뒤로 굴리고 마구 흔들었다. 재미있었다. 짜릿했다. 지금까지 타지 못한 것이 억울했다. ‘챔피언쉽로데오’의 어지러움을 만끽하고 ‘T익스프레스’의 맛보기라는 ‘롤링엑스 트레인’을 거쳐 ‘범퍼카’로 향했다.
어떤 지침이 있었는지 직원들은 양쪽에서 2인 1조로 나를 안내했다. 안전바를 체크하는 직원은 여러 차례 내게 별도의 설명을 해주고 탑승 전에는 헤드셋에서 나오는 안전교육을 5분씩 청취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긴 했지만, 그들도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빨간 자동차를 고르고 요란한 음악 소리와 함께 엑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보이지 않는 내가 차와 사람이 없는 곳으로 핸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돌릴 수는 없었지만, 범퍼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이리저리 돌리고 밟고 하다 보면 앞으로 가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또 구석에 박히기도 했지만 그 재미로 다른 이들도 타고 있었다. 신나고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환하게 웃었지만 울고 있는 아내를 마주했을 때 나도 울음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장 130cm만 넘으면 초등학생 꼬마들도 탈 수 있는 이런 것들을 덩치 커다란 어른이 16년 동안이나 타고 싶다고 애태웠던 시간이 복받친 감정으로 흘러내렸다.
‘이게 뭐라고!’
‘정말 이게 뭐라고’
지금이라도 탈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고 공감해 주는 이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T익스프레스는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지만, 두 번 정도 타고 나니 더 타고 싶은 맘도 들지 않았다. 나의 궁금증과 욕구를 해소하는 데엔 그냥 딱 두 번이면 충분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이런 것들을 보이지 않는 내가 공유할 수 있는 데까지 16년이나 걸렸지만 그 울분을 해소하는 데엔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시설과 제도는 근거도 없이 장애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보이지 않아서 정말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많은 것들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쉬운 방법으로 함께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다. 장애 없는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극도의 불편함인 장애는 대부분 허상이다. 내 몸 소중한 것은 내가 더 잘 안다. 정말 위험하거나 할 수 없는 것들은 내가 알아서 하지 않는다.
오늘이 오기까지 애써준 많은 활동과 도움들에 감사했고 늦게나마 결심해 준 애버랜드에도 감사했다. 함께 전동휠체어를 타고 동행한 동료에게 이제부터는 전동휠체어 롤러코스터 탑승시키기 운동을 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단순한 즐거움 정도는 모두가 어렵지 않게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휠체어 놀이기구가 말이 돼?”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16년 동안 내게도 그렇게 말했었다. 마음만 먹으면 우주도 갈 수 있는 오늘날 이 시점에 그건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나에게 있어 놀이동산을 돌려받은 독립기념일 같은 날이다. 모든 이들에게 놀이동산 이용의 주권을 되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