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산전 산후에 어떤 물건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산모에게 필요한 영양제부터 출산 이후 아이의 장난감까지… 시기별로 필요한 제품들을 본인들의 사용경험을 예로 들어가며 나열하고 설명해 주었다. 가족부터 회사 동료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려는 사람들이 권하는 물건들은 모두 다 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초보 남편이자 아빠의 마음으로는 뭐라도 하나 빼놓지 않고 사주고 싶은 마음 또한 진심이었다.
임부복도 사고, 젖병도 고르고, 분유와 장난감도 하나씩 선택해 가던 중 구매를 결정한 또 하나의 육아용품이 바로 자동차였다. 아내에게 운전면허가 있기는 했지만, 면허를 취득한 후 15년 이상 실제 운전 경력은 없었다.
보이지 않는 내가 차를 운전할 수는 없었고 둘이 다니기엔 대중교통도 편리한 편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생기기 전엔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가지고 싶다는 마음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려면 차가 필요하다고 하기에, 우리 아기에게 다른 아이들 필요한 것은 다 해 주고 싶었기에 차를 덜컥 계약해 버렸다. 다행히도 요즘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도 차를 인도받기까지는 꽤 오랜 기간 대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구매 결정을 내렸다.
판매처에서 연락이 온 것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기였다. 아직 산후조리도 끝내지 못한 아내와 내가 차를 인수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다음 달이면 큰 폭의 가격 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에 "네. 가져다주세요."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친절하게 집 앞 주차장까지 배달된 차는 당분간 우리 힘으로는 움직일 가능성이 없었다.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차를 옮겨달라는 전화를 받을 때도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며칠간 시동도 걸지 않은 차는 방전이 되기도 하고 나무 밑에 세워둔 차의 천장엔 새똥이 쌓여갔지만, 그때마다 우리의 힘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육아와 직장으로 하루 종일 바쁜 우리 부부였지만 부랴부랴 결심하고 연수를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 가득했겠지만, 아내는 퇴근하고 돌아온 내게 햇살이를 맡기고 5번 정도의 연수를 받았다. "생각보다 할만하네요."라고 아내는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지만 연수를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드라마틱한 상황의 변화가 있으리라고 우리 둘 다 확신 같은 것을 하지는 않았다.
놀러 온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몇 번 정도의 연수 아닌 연수를 추가로 진행했다. 좌회전이 되는 듯하면 우회전이 어렵고 똑바로 가는 것 같은데 차선 이탈 경고가 울렸다. 주행이 익숙해지는 것 같으면 주차가 걱정되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근교 카페도 가 보고 나의 직장에 출근도 시켜 주는 아내를 보며 처음 지팡이 보행을 하던 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지팡이 보행에 대해서는 여러 시간 이론교육도 받고 실내 연습도 하고 선생님을 동반한 야외 나들이도 했지만 혼자서 실전에 나간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똑바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가로수가 나를 끌어안고 인도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빵빵거리는 차가 뒤에 서 있었다. 지하철 입구는 매일 위치를 바꾸는 것만 같고 100m밖에 안 되는 거리가 몇 배는 더 길게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어찌 목적지에 도착은 해도 돌아오는 길은 또 다른 문제가 되기도 했다. 난 분명 시각장애인이었고 지팡이 보행도 배웠지만 다른 시각장애인들이 실제로 독립 보행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신기한 영역이었다. 지금의 내 아내가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는 심정도 그러하리라 짐작이 되었다.
그렇지만 시각장애인인 내게 지팡이 보행은 선택이 아닌 절실한 현실이었고 불안하고 두렵긴 했지만,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헤매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고 하는 동안 갈 수 있는 곳은 많아지고 걸음걸이도 제법 익숙해졌다. 어느 틈엔가는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도 큰 결심 없이 도전했다.
아내는 생각보다 빠르게 운전에 적응해 가고 있다. 함께 타고 있는 내가 스르르 잠이 들 만큼 꽤 괜찮은 승차감을 보여준다. 아직은 남들처럼 빠르게 달리거나 좁은 곳에 주차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제 우리 차도 필요할 때 조심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본연의 임무를 시작하는 중이다. 머지않아 아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훌륭한 운전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오늘은 방송국에 가는 내 일정을 아내의 운전이 함께해 주었다. 이동 도중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아내는 밝은 목소리로 "응. 나 운전 중!"이라고 여유 있는 웃음으로 답했다.
보이지 않는 난 이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내 아내도 차에 시동을 걸거나 움직이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내가 처음 지팡이를 쥐었을 때나 우리 집에 처음 차가 배달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은 그렇게 해결된다. 나 아닌 많은 선배 시각장애인은 이미 스스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고 우리 차 아닌 대부분의 자동차는 도로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언젠가 힘들었던 때가 있었던 많은 이들도 지금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지팡이 보행이나 운전처럼 내겐 또 다른 막막한 과제들이 던져지겠지만 그것들은 이미 많은 이들이 이미 해결한 것들이다. 많은 이들이 해결했다는 것은 내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내가 운전하게 되니 가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내 보행이 익숙해진 것처럼 아내와 함께 주말 나들이를 즐기는 날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