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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Aug 12. 2019

위로의 기술

"승준씨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의학이 발달하면 우리처럼 잘 볼 수 있을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사람들 만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적지 않게 듣게 되는 덕담이자 위로의 말이다.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말한이의 의지가 나쁜 것도 아닌데 많은 순간 내게는 그다지 긍정적인 영향력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기분이 나쁠것까지야 없지만 굳이 왜 그런소리를 할까하는 생각이 들 때는 많다.

눈이 불편한 사람에게 그것이 해결되는만큼 좋은일은 없으므로 막연한 희망정도야 갖고 살아가지만 새로운 의학기술이 확실히 나타난 것도 아니고 짧은미래안에 확신할만한 변화의 근거도 없이 뱉어내는 이야기들은 의도와는 다른 작용을 만들때가 많다.

취준생 청년들에게 "어딘가에 네 자리는 꼭 있을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나 짝 없는 싱글들에게 "너도 곧 좋은 사람 만날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긍정에너지 참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무한희망의 메시지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 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오늘은 어제죽은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 하는 그럴듯한 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발동하게 하는 멋진 격언들이긴 했지만 청춘마저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아픈 청년들이나 오늘 어떻게 살지조차 확신없는 사람들에겐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그냥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릴적 망쳐버린 시험지 들고 망연자실하던 내게 가장 큰 위로는 옆자리 짝꿍이 보여주던 더 심하게 망친 시험지였다.  

인생의 과정이 어쩌고 쓴 열매가 저쩌고 하는 그럴듯한 이야기는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그 순간의 어린 나의 괴로움을 달래기엔 너무 먼 나라 이야기였다.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배신 당했던 어느때 내게 힘이 되었던건 나 대신 걸죽한 욕을 내뱉어 주던 어느 친구의 육두문자이기도 했고 취업고민하던 때의 가장 큰 위로는 조용히 찾아와서 술 한잔 기울이고 묵묵히 술값 계산하던 친구의 손길인 때도 있었다.

요즘은 말 잘하는 사람도 많고 강연가도 철학자도 너무 많다.

그들은 모두 확신에 가득 차있다.

그들이 말하는대로 하면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우리는 그들과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많이 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수십수백의 감정표현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들 모두가 때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웃는게 좋을 때도 있지만 울음도 꼭 필요하다.

용서와 이해가 필요하다면 때로는 화를 낼 용기도 필요하다.

긍정에너지 좋은 말 착한 마음 그것들이 만병통치약이라는 확신을 버리기를 바란다.

어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고대 철학자의 심오한 사상보다는 당장 느낄 수 있는 단순한 즐거움일 수 있다.

당신이 위로 하고 싶은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생각들이 아니라 그가 지금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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