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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Aug 04. 2019

젖어버린 운동화에 대한 감사

요즘 같은 장마철이면 시각장애인인 나에겐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생긴다.

짐작하는 것이 한 손에 우산 들고 다른 한 손엔 지팡이 짚고 이래저래 물건 들고 다니는 것이라면  그 정도는 이젠 익숙해서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느끼는 특별한 어려움이란 건 여기저기 물 고인 웅덩이들이다.

평소엔 나름 평평하고 고르게 보이던 바닥인데도 비 오는 날 혹은 비 온 다음날 길을 걷다 보면 흙탕물 한껏 머금은 물웅덩이가 되어 있곤 한다.

출근하다가 발이 빠지기라도 하면 그 날은 하루 종일 찝찝한 마음으로 축축한 신발과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작년 어느 날 직장동료가 그런 나를 보고 추천해 준 운동화 하나가 생긴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보기엔 그냥 특이할 것 없는 신발인데 이것만 신으면 바닥으로도 위로도 옆으로도 물이 샐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다.

디자인이 특이한 것이 아니어서 유별나 보이지도 않았고 다른 운동화 못지않게 착용감도 좋아서 비예보가 있는 날이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 신발만을 꺼내 들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에 '풍덩' 하고 발이라도 빠지면 오히려 젖지 않은 나의 발을 느끼며 묘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젖은 신발 젖은 양말 때문에 괴로워하는 동료들에겐 이런 거 모르냐며 으스대며 추천하기도 했다.

며칠 전 오전에도 퍼붓는 빗소리를 듣자마자 난 신발장에서 그 녀석부터 꺼냈다.

우산에 빗줄기 부딪히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든든한 신발 덕분에 난 그냥 더위 식혀주는 시원한 소리 정도로 즐겁게 느끼고 있었다.

'풍덩' 하는 물에 빠지는 소리도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소리도 한 동안 너무 더웠던 날씨 탓인지 그저 반갑게만 들렸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는 동안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의 상쾌한 기분이 조금씩 그렇지 않은 상태로 변해가게 되는 사건이 시작되고 있었다.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신발 속으로 조금씩 습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기분 탓이려니 했는데 점점 양쪽 발에 같은 감각이 느껴지더니 어느 틈엔가는 축축해질 정도로 축축해진 내 발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앞도 옆도 위도 철저히 막혀있는 신발이긴 했지만 그것도 신발은 신발이기에 사람의 발이 들어가는 부분까지 완벽히 막혀있을 수는 없었다.

바람과 만난 비는 그 위력을 더해 가면서 옆으로 날아들어 내 종아리와 발목을 적시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기어코 신발의 속으로 잠입을 성공했던 것이다.

사방이 막힌 신발이라 한 번 들어온 물기는 다시 밖으로 빠져나갈 수도 없어서 더욱 급속도로 내 발을 담고 있는 두 개의 수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당연히 젖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때의 찝찝함과는 뭔가 좀 다른 배신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안정된 실내로 들어와서 신발과 양말을 정리하고 옷을 추스르면서도 꽤나 당황스러운 기분을 오랫동안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내가 느낀 실망감의 크기가 큰 것은 그동안 운동화가 준 믿음의 크기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비가 오면 으레껏 발은 젖는 것이라고만 알고 살았다면 느끼지도 못하고 살았을 실망감을 그동안의 느낀 편안함으로 인해 난 몇 배로 느끼고 있었다.

여전히 그 운동화는 여러 날 나의 발을 뽀송뽀송하게 지켜주었던 그 운동화이고 오늘의 사건은 그 녀석도 원래부터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었을 뿐이다.

사실 난 오늘의 찝찝함으로 인해 그동안의 운동화의 소중함에 대해 더 진하게 감사해야 했다.

행복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것이 흐려지는 순간 사람들은 큰 아픔을 느낀다.

시원한 에어컨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위에 더 헐떡이고 진한 사랑을 나눈 이들의 이별일수록 더 가슴이 아프다.

고기 맛을 아는 사람이 고깃집 앞에서 침이 고이는 것도 여행 좀 해 본 사람이 휴가 없는 어느 날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도 경험한 이전의 기쁨의 기억이 소중한 덕분인 것이다.

난 재벌들의 호화스러운 생활들에는 그다지 큰 부러움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내가 겪어본 적 없는 것이어서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나 실망감 같은 것은 없다.

다정한 연인을 바라보고 외로움이 밀려오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그도 달콤한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고 배고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배부름에 익숙했을 가능성이 높다.

늘 고통 중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익숙함이 되어 행복함에 대한 상대적 박탈이나 갈구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상실이나 부족함에 대해 진한 감정으로 아파하는 것은 그에 상대되는 좋은 것들에 익숙했었기 때문인 것이다.

다만 행복을 누린 시간은 길기 때문에 익숙함이 되었고 아픔은 이따금 찾아오는 감정이기에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내 운동화가 매일 비가 샌다면 난 그것에 익숙해져서 튼튼한 방수 운동화 따위는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이 나의 발을 뽀송뽀송하게 또 오랜 시간 지켜준다면 언젠가 큰비로 다시 발이 젖는 날 난 또 크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발이 불어버릴 정도로 젖는 날 그동안 빗속에서 나를 지켜준 운동화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뼛속 깊이 외로움이 느껴지는 날 뜨겁게 사랑한 옛 연인에게 감사하고 싶다.

자취방에서 밥 하고 빨래하고 집안일이 힘들어질 때 그동안 보살펴 준 부모님께 감사하고 싶다.

길지 않은 아픈 시간들이 네게 있어 그동안의 길고 긴 고마운 시간들에 대한 감사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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