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영화의 장면들은 주인공의 움직임이나 스토리를 쫓아서 움직인다. 몇몇의 특별한 작품들을 제외하면 조연들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장치로서 작용할 뿐이다.
강력한 히어로에게 제압되는 악당이거나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친구 역할이라도 주인공보다는 강할 수 없다. 가장 잘생기거나 가장 인기가 많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은 주인공의 몫이다. 이따금씩 슬픈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주인공들이 있긴 하지만 그때마저도 모든 상황과 조연들은 주인공이 그럴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대변하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맞이하다가도 속편에서 더 말도 안 되게 부활하기도 하고 끝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죽게 되더라도 그것은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한 영화 중 더한 예외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주인공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가 던지는 메시지에 집중한다. 그 의미가 옳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그가 던지는 화두에 우리가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과는 관계없이 주인공은 온전히 주목받는 존재의 가치를 가진다.
'배트맨' 영화에서도 늘 그랬다. 배트맨은 늘 선한 역할이고 정의를 실천하는 쪽이었으므로 관객들은 그의 편에서 응원하고 걱정하고 생각했지만 그가 변심하거나 배반을 하더라도 우리의 감각들은 그를 쫓아서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주인공이었고 모든 연출은 그에게 집중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커'라는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배경은 같았지만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는 한 장면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성장배경이 그가 악당 우두머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지만 여전히 그는 악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삶이 있었고 그도 독립적으로 존재했고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배트맨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커 아닌 다른 등장인물들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감독의 의도대로 충실하게 감상한 덕으로 주인공 아닌 존재들에 대해서 충분한 의미부여를 하지도 않았고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고 영화라는 매체에서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화에서 그런 것이지 우리 삶에서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
우리 각자는 모두가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도 그들의 입장에서 모두 주인공이다.
어느 영화배우처럼 불세출의 외모를 가지지 않아도 슈퍼히어로처럼 강한 능력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모든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앵글을 만들어가는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조연이나 엑스트라쯤으로 가치 절하해서도 안 되지만 상대를 대하는 것도 그렇다.
세상은 70억 명이 각각 주인공인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고 있는 멀티플렉스이다.
조금 더 주목받는 영화도 있고 관객은 적어도 스토리가 아름다운 영화도 있다. 멋지게 광고하고 포장된 영화도 있지만 겉으로 보기엔 조금 초라한 영화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영화에서든 주인공은 있고 우리가 바로 각자의 영화 속 주인공이다.
'배트맨'이 되었든 '조커'가 되었든 우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주인공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를 존중한다.
새해에는 각자가 주인공이라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서로가 주인공이라는 존중의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