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19살 겨울을 맞게 된 친구 녀석이 큰 고민이 있다면서 내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던 적이 있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고 이름난 대학 합격증도 없다는 등등으로 이어지는 그 친구의 고민은 끝도 없이 이어졌지만 요약하면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스무 살이 되는 본인은 망한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생일이 조금 빠른 덕분으로 한 살이 어렸던 나의 상황을 부러워하던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겠지만 365일쯤 지났을 때의 나의 상태나 마음가짐도 그때 그 친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부모님께서 주시는 용돈 말고는 크게 모아 놓은 재산은 없었고 탄탄한 미래를 보장할만한 그 어떤 준비라고는 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마냥 조급했고 괜히 불안했다.
서른이 되어가던 10여 년 전쯤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고민의 모양은 조금 달라졌지만 난 여전히 조급했고 불안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개학을 앞둔 초등학생의 밀린 과제물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멀리만 보이는 내 집 마련의 꿈은 인생 전체가 망막하게 느껴지게 했다.
유학을 마치고 박사님이 되어서 돌아온 친구들을 만나면 당장이라도 어학연수라도 떠나야 할 것 같았고 대기업의 높은 연봉을 받는 친구들을 만나면 멀쩡히 다니던 내 직장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생 중 30대가 가장 좋았다는 어느 어른의 말은 중병 걸린 환자에게 "곧 건강해지실 겁니다."라고 하는 선의의 거짓말이거나 그도 아니면 기억의 왜곡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내 나이는 또 한 번 앞자리를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때 그 친구의 걱정과는 달리 그 녀석도 나도 그리 크게 망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고 30대는 생각보다 살만했다.
나름 먹고살만한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고 몇 번의 뜨거운 연애도 했다. 이따금 술자리에서 침 튀기며 자랑할만한 왕년의 스토리도 조금 만들었고 문득 기분 좋게 떠올릴 추억들도 쌓았다.
세상은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덤벼볼 만했고 하다 보면 뭔가 최악 아닌 결론들을 만났다.
40이라는 낯선 숫자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나의 상태는 솔직히 10년 전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의 시간들과도 관련 없고 앞으로의 시간들과도 크게 연관성 없는 걱정들과 불안함이 머릿속을 맴돈다.
여전히 짝을 찾지 못한 내 상태가 불안하고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도 한다. 그러나 몇 번의 10년들을 지나치면서 내가 마주할 결과는 늘 나의 걱정보다는 나은 것이 었음을 알게 되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여느 날짜의 전환처럼 하루가 변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변하는 것은 단지 숫자일 뿐 갑작스러운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큰 걱정이 갑자기 생기지도 않고 새로운 과제가 뚝 하고 떨어지지도 않는다.
서서히 어른이 되고 천천히 시간이 흘렀던 것처럼 또 조금씩 해결하고 또 조금씩 이뤄가는 시간 중 한 순간일 뿐이다.
나이 드는 것에 초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디지어가며 자라나는 식물들처럼 해가 넘어가고 숫자를 더해가는 요맘때쯤 한 해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것으로 족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 잘될 것이다.
내일도 내년도 새해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