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인의 유행어 중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있었다.
내가 아는 문장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설득력 떨어지는 것 중 하나이다.
어릴 적 어설픈 동네 형아가 구슬치기 가르쳐 줄 때도 그랬고 두서너 살 많은 복학생 선배의 대학시절 연애강의가 그랬고 유난히 스스로의 세계에 빠져 사는 직장상사의 훈계에도 "내가 해 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구술은 과장된 허풍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진실로 해 보았을 수도 있고 스스로의 경험에 대한 또 다른 적용들의 성공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예측은 실현되는 확률이 너무도 낮았다.
빠르디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더 그렇다.
몇 년 전에는 혁신과 최첨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나온 스마트폰이 얼마 안 되는 시간 사이에 실사용 불가능한 수준의 퇴물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또 다른 누군가의 시도에 성공을 단보하는 것은 아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세대 간의 갈등 해소 방안' 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의뢰받았다.
강의로 옮겨 본 적이 없던 주제이기도 했고 나와 우리 집 또한 그런 문제에서 완벽히 자유로운 편은 아니어서 정중한 거절 의사를 표했지만 담당자의 거듭되는 요청에 선수락 후 고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책도 읽고 자료도 찾아보고 이런저런 생각정리를 하던 중 불연 듯 내 머릿속을 스치는 문장이 바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 였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우리는 불행한 세대입니다. 몇 백 년 전에 태어났으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세대갈등을 겪고 있으니까요." 였다.
삼국시대나 조선시대 혹은 그보다 훨씬 전인 선사시대의 삶의 모습은 지금에 비해 큰 변화가 없었다.
할아버지도 '논어', '천자문', '명심보감', '사자소학'을 읽었고 아버지도 나도 또 나의 아들도 그것을 읽었다.
선대가 과거를 준비했던 것처럼 나도 장원급제를 꿈꿨고 혹시 모를 나라의 위기에 대비하여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도 배웠다.
때때로 실학이나 외부의 새문 물들처럼 전에 없던 것들이 생겨나긴 했지만 민족 전체의 삶을 바꾸는 데에는 적어도 수백 년이 걸렸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이 얼마든지 가능했던 것이다.
"내 나이 되면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은 정말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알게 되는 놀라운 예언이었고 자연스럽게 어른을 공경하고 효를 실천해야 했다.
그 시대 살아보지 않은 나의 일방적 주장이라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땐 "해 봐서 아는데..."가 통했고 그래서 세대 간의 갈등이라는 것도 훨씬 적었다.
가업의 계승도 가치의 전달도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할아버지와 '새마을운동' 겪은 아버지 그리고 '군부독재'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 한 아들과는 삶의 경험도 가치의 지향도 너무도 달랐다.
'힘닿는 데 까지 낳아야 한다'라는 출산정책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거쳐 '잘 낳은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로 바뀌어 가면서 가족계획에 대한 가치도 그 세대를 맞추어 변해갔다.
결혼은 선택일 뿐이고 영화 제목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인 지금의 세대들과는 물론이고 아버지와 그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배우고 추구하는 것들이 너무도 달랐다.
읽은 책도 먹는 음식도 달랐던 세대들의 정치성향과 삶의 가치가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해 봐서 아는데..." 라는 말은 그래서 그 의미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주장한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린 세대들은 그들 나름대로 어른들의 삶을 책으로 읽고 미디어로 봐서 다 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집단이 서로에 대해 거의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시발점인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로 출발하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도 장애인 비장애인의 문제도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충돌의 시작인 것처럼 말이다.
며칠 전 선물 받은 무선 이어폰은 같은 회사에서 만든 작년 제품과는 같은 회사 제품이 맞는지 의심될 만큼 큰 변화를 가져왔다.
얼마 전 놀러 간 친구 집의 사물인터넷은 몇 년 전 인테리어 공사를 새롭게 진행한 우리 집의 구성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새로운 것들이었다.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우리도 그렇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선택지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점점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살아간다.
"해 봐서 아는데" 는 의미 없음의 가능성을 점점 높여간다.
서로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출발점이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만나는 명절이 다가온다.
이번에는 그동안 몰랐던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