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은 이사를 자주 다녔다. 덕분에 나도 3군데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뉜 시골의 학교와 서울 한복판의 학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것 들 투성이어서 한순간 한 순간이 적응의 연속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은 입학 날과 전학의 첫날들이다.
어머니는 매번 학교와 집 사이를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시며 작은 나에게 등굣길과 하굣길을 설명해 주셨다.
"잘 갔다 올 수 있지?"
"엄마가 데리러 갈까?"
첫날 등굣길 아침의 어머니의 말씀도 한결 같았지만 그때마다 솔직하지 않았던 나의 대답도 늘 같았다.
"그럼요. 제가 애도 아니고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대답과는 정반대로 극도로 불안한 나의 마음 상태도 늘 같았다.
시골학교의 넓은 운동장 사이에서 나의 교실을 찾아가던 1학년 첫날에도 아파트라는 곳에 처음 살게 되었던 서울 학교의 첫 등교 때도 그나마 조금 컸다고 느끼던 3번째 학교의 4학년 첫 등교날에도 나의 온 정신은 길을 찾고 또 외우고 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주어진 뇌 용량의 포화상태를 느낄 만큼 최대한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파트라는 것들은 왜 굳이 저렇게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놓은 걸까?'
'골목은 왜 이리 복잡하고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진 걸까?'
새로 배정된 학교에서도 학년, 반, 번호, 선생님, 친구들, 알림장 등등 외워야 할 것이 산더미였지만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간까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돌아가는 길과 아파트 동, 호수였다.
쪼끄만 자존심으로 어머니께는 절대로 학교 앞에 오시면 안 된다고 씩씩하게 이야기했지만 나의 큰소리와는 달리 난 5층 아파트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느낄 만큼 어린애였다.
10분 거리도 안 되는 하굣길을 조심조심 살피고 더듬어가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느낀 안도감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대장님의 성취감과도 비슷했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등굣길과 하굣길은 그 후로도 며칠간은 비슷한 정도의 긴장감을 동반했지만 나름의 랜드마크가 생기고 함께 걷는 친구를 만나면서 편안함으로 가까워졌다.
시간이 지나서 처음 특수학교에 입학하던 때에도 지팡이 집고 넓디넓은 대학의 캠퍼스를 걷던 또 다른 처음의 시간들에도 난 또다시 불안했고 또다시 편안해짐을 반복했다.
이제 내가 더 이상 전학 가거나 입학할 일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는 것은 불안한 새로움의 연속인 것 같다.
새해가 되고 새로운 업무를 맡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나이와 시간을 경험한다.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앞두고 있는 2020년의 내겐 또 다른 불안함이 가득하다.
그 언젠가의 아파트들처럼 세상이 너무 커 보이기도 하고 복잡했던 길들처럼 통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길을 내디뎌야 학교도 가고 집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또 다른 시작들을 만나보려 한다.
불안한 등굣길이 편안한 학교길이 되어가면서 난 길을 알았고 친구를 만났고 한 뼘씩 자라 갔다.
오늘 나의 계획들에 대해 누군가 물어본다면 난 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걱정 마셔요. 제가 애도 아니고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역시 불안하지만 또 한편 쪼끔 자신도 있다.
생각보다 길은 복잡하지 않았고 집과 학교는 그리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