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이라는 새해를 나타내는 숫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을 처음 받아들일 때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레 지난 10년을 떠올리고 회상하고 정리하게 만드는 것 같다.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동료 선생님들도 그랬다. 교사가 된 지 몇 년 째인지 세어보기도 하고 그간의 변화들에 대해 새삼스레 크게 느끼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희미해진 서로의 옛날이야기를 꺼내어 깔깔거리기도 하다가 "그때 참 좋았지." 하며 깊은 회상을 하기도 한다.
좋은 기억들 떠올리고 오랜 시간들 한 번쯤 정리하는 것은 앞으로를 위해서도 괜찮은 쉼표 같은 느낌이지만 또 몇몇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을 느끼는 사람들에겐 기억의 모양이 좋으면 좋을수록 그 마음은 반대의 방향으로 감정을 키워나간다.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의미 없는 미련들은 인간 존재에겐 쉽게 떨쳐내기 힘든 본능적 숙명인 것 같기도 하다.
가능성 0인 상황은 포기하기 가장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것도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만약을 떠올리고 한 줌의 가능성을 놓지 못한다.
그리고는 그럴 때마다 다시 깨닫게 되는 불가능과 마주하고 슬퍼하기를 반복한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쿨하게 가능 없음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좋은 날처럼 미래의 그런 날을 꿈 꾼다면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을 단호하게 내려놓는 일부터 해야 한다.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미련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새물건으로 도착할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고 너무도 쉬운 이야기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헤어진 연인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진심으로 축복하고 깔끔하게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차자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최선의 답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나의 감정이 향한 곳은 그리움과 혹시라는 말도 안 되는 최악의 선택지를 향했다.
처음 실명 선고를 받았을 때 내가 해야 할 일도 아직 남아있는 나의 가능성을 깨우기 위한 재활이었지만 그때 내가 선택한 것도 돌아올 수 없는 시력에 대한 비이성적인 투자였다.
세상엔 기적이라는 것도 있고 다수의 예상을 벗어나는 놀라운 일도 없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상황이 그렇지는 않다.
상식의 확률로 생각하면 우리가 명확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생각 외로 많다.
돌아올 수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로맨티시스트들에게 새로운 사랑의 목표가 생기기를 바란다.
과거는 또 다른 미래를 위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되새기기를 바란다.
새해 덕담을 건네는 어느 어른께서 열 개의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하나의 미련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더 멋진 미래를 위해 냉정한 마음의 정리가 필요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