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복판의 난시청

by 안승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탐구생활'이라고 하는 방학 과제물 책이 있었다.

교과와 관련한 내용도 있고 상식이나 교양과 관련한 내용들도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방송수업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TV나 라디오로 설명을 들어가며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혼자서 책만 보고도 알아내고 풀어낼 수 있는 단원도 있기는 했지만 다양한 자료 제시하면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방송은 공부나 숙제마저도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주 큰 문제 하나는 어린 내가 살았던 지방 도시에서는 그 방송이 나오던 EBS 채널이 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선방송 달아 놓은 몇몇 친구 집에서나 나오던 TV수업은 내겐 그저 먼 나라의 부러움일 뿐이었다.

그나마 기다란 안테나 이리저리 돌려가며 라디오 수업 정도는 들을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어떤 날은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듣다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서울로 전학 왔던 첫 방학! 난 우리 집 TV도 유선을 달지 않아도 EBS가 선명하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라디오도 물론 깔끔하게 나왔고 '탐구생활'의 학습환경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달라져 있었다.

개학날 친구들이 제출하는 결과물도 전 학교의 친구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답란이 모자라서 별도의 종이를 붙이기도 하고 아예 다른 노트까지 동원해서 적어내는 아이들의 과제물은 부록의 만들기 작품까지 더해져서 탐구생활의 완벽한 성취가 무엇인지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탐구생활 지도서와 풀이집까지 판매하는 서울의 문구점을 알았을 때는 이래서 서울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씁쓸한 인정을 했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 학교들은 갑작스러운 코로나 사태로 개학이 늦어지면서 온라인 학습방법들을 연구하고 만들어 가고 있다.

대학은 물론이고 초, 중 고등학교까지 여러 가지 온라인 매체를 동원하여 학습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데에 선생님들은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시행착오도 있지만 발달된 IT 환경은 생각 외로 훌륭한 온라인 학습 자료들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대학들은 온라인 강좌를 개설했고 중, 고등학교들도 다양한 사이트와 연계하여 가정학습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편리하다는 평가들도 나오고 이것을 계기로 관련 연구를 더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긍정적인 제안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아주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시각이나 청각에 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강의의 내용이 어떠냐 와는 관련 없이 더 큰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자막이나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온라인 강좌는 청각장애 학생들에게는 유선 없는 시골의 TV나 다를 것이 없다.

독화가 가능한 친구들은 조금이나마 나은 상황이지만 그나마도 마스크 끼고 나오는 강사들의 방송은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시각장애인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판서나 자료화면들로 대체되는 온라인 방송은 알 수 없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들로 가득하던 난시청 지역의 라디오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이나 PDF 위주로 제공되는 학습자료들도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지만 무엇보다 온라인 강좌나 자료가 탑재된 사이트의 접근성 자체가 보장되어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안 그래도 몇 배의 수고로움을 들이면서 공부하는 장애학생들에겐 또 한 번 장애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서울 아이들의 과제물이 우수했던 것은 원래의 능력에 차이가 있었다기보다는 교육환경의 차이였다.

강의나 자료 접근성의 차이는 장애 학생들에게 평등하지 못한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위기는 어떠한 대처를 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위기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은 기회가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장애학생들이 겪고 있는 지금의 불편함과 불평등이 기회의 기울어짐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평등해야 하지만 교육은 무엇보다 평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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