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형들과 캐릭터 카드게임을 할 때면 매번 느끼게 되는 자괴감 같은 것이 있었다.
특별히 전략 같은 것도 없는 확률게임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내 손에 쥔 카드는 매번 0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초반 몇 번 정도는 한 두장씩 걸고 이기기도 하지만 나중엔 열장 스무장씩 배팅하는 형들에겐 나 같은 꼬마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용돈의 규모가 달랐기에 지닌 카드의 숫자가 자릿수부터 달랐던 우리는 처음부터 출발선이 다른 불공평한 게임을 했던 것이다.
끊임없이 더 많은 카드를 원했던 형들의 욕구 앞에서 나에겐 작은 차지도 허락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이나마 경제를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어쩌면 자본주의의 폐해인 양극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더욱 슬픈 것은 나 역시 꼬마를 벗어난 또래의 자본가가 되었을 때 다른 꼬마들을 카드 극빈층으로 몰아넣는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유 없는 숫자 늘리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다른 꼬마들의 사정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GDP로 계산해도 GNI로 계산해도 국민 모두가 충분히 넉넉하게 살 정도로 성장했지만 아직도 가난과 굶주림과 관련한 뉴스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말하고 양극화의 극복을 논하지만 그것은 나의 경제 수준이 하위집단에 있을 때나 부르짖는 제한적 외침인 듯하다.
최저시급 인상이나 부동산 가격의 현실화를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가 가지지 못했을 때에 한하고 요행히 집이라도 하나 가지게 되면 우리 동네 집값 올리기가 인생 최대의 과제가 되곤 한다.
의미 없이 카드의 숫자를 박스단위로 늘려가던 동네 형들처럼 자본의 갑이 된 사람들은 필요의 가치와는 아무 관련 없는 재산의 숫자 불리기를 일생일대의 과제로 삼는 것만 같다.
정해진 파이 안에서 누군가가 많이 가질수록 또 다른 누군가는 갖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잊는 작업이 벌어진다.
코로나 19 사태가 100일이 다 되어가는 요즘 대한민국은 마스크 전쟁 중이다.
KF인증이 된 보건마스크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무서운 전염병에 걸리기라도 하는 듯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한 장이라도 더 많은 마스크를 구하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진정 효과가 있는 것인지 그것이 없으면 얼마나 더 위험한지는 정확히 알지도 못한채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들을 더 흥분시키고 사재기를 유도하는 듯하다.
하루 최대 생산량이 천만 장 정도라는 것을 고려하면 5천만 국민이 공평하게 나눠 쓸 수 있는 1인당 마스크의 양을 계산하는 정도는 어린아이들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없다.
수십 장이고 수백 장이고 일단 살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때 마구잡이로 사 들인다.
나의 마스크 개수가 늘어나는 것이 무방비 상태의 다른 이를 늘려가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는다.
정부의 이런저런 대책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안면부지의 사람들과 촘촘히 붙어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어리석음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
생각 없이 카드를 모아가던 어린 골목대장 형들이나 재벌이란 이름으로 자본을 독식하는 악덕 기업주들이나 그 마음의 결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일부 가진 자들의 횡포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본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매진 표시가 붙은 인터넷 쇼핑몰의 라면과 소독제들이 우리들의 슬픈 이기심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잘 먹고 잘 살만큼 벌고 있다. 단지 나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마스크도 우리 모두가 일주일에 2~3개 정도 사용하는 정도는 생산되고 있다.
혼자 말고 다 같이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하길 바란다.
나의 가짐이 누군가의 부족함이 되는 것은 아닌지 자주 고민하는 세상을 꿈꾼다.
"I'm ok. You first."라고 말하는 넉넉한 마음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