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아파트는 노후 수도관 교체 공사가 진행중이다. 아파트가 터질 것 같은 큰 폭발소리가 나기도 하고 매일 다니던 길이 파헤쳐져 있기도 한다. 조금 불편한 일들이 생기기는 하지만 길을 다니거나 집안에서 생활하는데 그리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어서 한 달 정도 되는 공사기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전 아침은 좀 달랐다. 매일 다니던 길에서 큰 중장비 소리가 들리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길 전체를 막고 있는 기계들도 문제였지만 청각에 많은 부분 의지하며 걸어다니는 나에게 그렇게 큰 소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어정쩡하게 들고 도움을 청할 곳이 없나 살펴봤지만 공사소음들에 묻혀서 그런지 사람소리는 들리지가 않았다.
난 출근을 해야했고 길은 막혀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만히 멈춰 서서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분명히 사람 하나 정도는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있거나 어느 쪽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우회로 안내표시 정도는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 작은 가능성을 믿고 위험한 전진을 할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던 시간이 어느정도 흘렀을 때, 어떤 투박한 손이 드디어 나에게 구원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
공사를 하시던 분인지 지나던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분이 이끄는 길은 예상대로 조금만 돌아가면 되는 간단한 경로였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걸어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은 적지 않은 순간 출근길에 갑자기 공사장을 마주하는 것 같은 경험들을 반복한다.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고 살아가지만 불연 듯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상황들은 무기력하게 멈춰설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만든다.
처음 보이지 않았을 때 친구들이 즐겨하던 오락실의 게임들이나 운동장의 공놀이들도 그랬고 어느 정도 자랐을 때 능숙하게 운전하던 또래들의 모습도 그랬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간 식당에서 고기를 맛있게 구워주는 매너를 발휘하는 것도 갑작스레 아파하는 친구를 위해 얼른 달려가서 구급약 한 알을 사 오는 것도 내겐 꼭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는 벽으로 느껴졌었다.
직장을 찾을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인생의 공사장은 언제나 나타났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었을 뿐 어떻게든 결론에 도달하는 잠깐의 문제들이었다.
때로는 복잡하고 낯선길을 굳이 혼자 지팡이를 짚고 찾아가고 유행하는 게임들의 소리를 외워가며 해 보기도 하고 눈이 보이는 사람들만 할 수 있다는 스포츠에 억지로 도전해 보기도 했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식으로 얻어낸 성취들이 삶에 있어서 지속적인 에너지가 된다면 그것들은 충분히 의미있는 것들이었겠지만 내게 있어서 매번 그렇지는 않았다.
살면서 받아드는 선택지는 정말 많지만 그것들을 모두 경험하고 잘 할 수는 없다.
내가 해야 할 것들은 그 중 일부이고 잘 해야 하는 것은 그것보다도 훨씬 적다.
무력함 갖게 하는 불가능의 영역들은 대부분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그래도 하고 싶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난 공사장을 지나가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꼭 혼자서 그걸 해낼 필요는 없었기에 잠시 멈춰서 있었다고 우울할 필요는 없었다.
이름 모를 어떤이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지만 그런 이유로 하루쯤 출근을 못한다고 해도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운전을 못 하는 것도 친구들과 함께 게임하면 어울리지 못했던 것도 그 시간 나에겐 너무 큰 장애였지만 그런건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꼭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여러 가지 할 수 없는 것들을 걸러내는 동안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가지지 못하고 할 수 없어서 아쉬운 대부분은 가지지 않아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가질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해도 인생은 충분히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