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계단으로 걷는 이유

by 안승준

작년 어느 여름날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 적이 있다. 고장이 나서였는지 아니면 부품의 교체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며칠 동안 꽤나 투덜거렸던 것만은 확실하다.

깨끗이 샤워를 하고 나서도 잠시 아래층에 내려갔다 오면 땀이 줄줄 나고 하는 상황이 외출할 때도 돌아올 때도 영 좋지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쯤 같은 상황이 반복되던 날 샤워를 하다가 우연히 만져진 내 다리가 왠지 조금 튼튼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변화가 있었으면 얼마나 있었겠냐만은 뭔가 이상한 성취감 같은 것이 들었다.

10층 가까이 되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한걸음 한걸음 건강해지는 시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같은 높이 같은 시간을 오르내리고 있었고 땀이 나는 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투덜거림은 상쾌한 성취감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어느 틈엔가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하고 있었지만 난 여전히 계단을 이용했다. 컨디션 좋은 어떤 날엔 집이 좀 더 높은 층이면 좋겠다는 이상한 욕심마저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난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가서도 기구가 있으면 짬을 내서라도 운동을 하고 특별한 일 없으면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때를 제일 좋아하기도 한다.

계단 오르기는 그런 이유에서 내게 주어진 또 하나의 운동시간이었고 처음부터 내겐 선물 같은 기회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지 않았던 불편함이라는 첫 느낌 때문에 며칠 동안 불평과 원망의 대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1년을 훌쩍 넘긴 시간 동안 매일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출퇴근 시간은 내게 있어 또 하나의 기쁜 일상이 되었다. 그 시간이 처음의 날들보다 가뿐하게 느껴지는 것 보면 보너스 체력도 보상으로 받은 것 같다.

분명히 같은 상황들의 반복인데 생각을 어디에 두는 것의 차이는 완전한 반대의 느낌을 주었다.

직장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친구 집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약속 장소의 계단을 이용하면서 계단을 만나는 시간이 즐거워지고 또 다른 계단을 찾는 취미가 생겼다.

세상의 변화는 나의 시선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한다.

친구의 생일날은 어떤 이에게는 선물값을 지출해야 하는 또 하나의 부담스러운 날이겠지만 그 날이야말로 친구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 일터의 고단함은 반복되는 일상의 스트레스라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선물값을 벌고 있는 설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수학교사이기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보다 책이나 노트 없이 암산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 또 어쩐 일인지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한산하던 비상계단이 붐비고 있었다.

언젠가의 나처럼 투덜거리는 이도 있었고 또 다른 나처럼 웃으면서 지나가는 이도 있었다.

나의 세상을 행복하게 바꾸는 것은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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