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까 vs 피할까.
불편함을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투쟁 혹은 도피 반응.

by 노란사과


Fight-or-flight.

투쟁 혹은 도피 반응.


어떤 스트레스나 위협을 감지했을 때 인간이나 동물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반응을 말한다.


투쟁 혹은 회피. 스트레스 발생 상황에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몸은 그 즉시 싸우거나 도망치기 위한 반응을 한다. 편안함을 느끼던 하루에서 어떤 스트레스가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그것의 원인이 될 것 같은 걸 피하기도 하고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그 상황을 피하기도 한다.


불편한 사람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불편한 관계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긴 했는데 불편해진 사람이 있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이제는 마음이 멀어지기도 하는 나이가 되었나. 어쨌든 나와 손절한 사람을 마주쳐야하는 불편한 상황들이 오면서 내 몸은 Flight(도피)모드로 변해 최대한 그 상황을 피하려 한다. 20대에는 안보면 그만일 것이 같은 동네이고 아이와 엮인 사회에서 살다 보니 안 볼 수 없는 굴레 속에 있다. 정말 불편한 상황이다.


처음부터 관계가 이러진 않았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그렇게 되기 전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렇다는 걸 인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상욱 시인 인스타에서 본 글귀가 참 공감된다.


어렸을 때는

친해지고 싶어서 힘들었고

나이가 드니

멀어지고 싶어서 힘이든다


멀어지고 거리둔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나대로 인연을 맺었던 거다. 나를 다 내어주었던 거다. 몰랐다. 친밀함과 감정호소를 무기로 뺏은 호의는 진정한 호의가 아님을.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하여 상대방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하는 일방적인 강요는 배려가 없는 것임을.

상대방에 대한 존중없이 무리한 부탁아닌 부탁은 거의 반 협박임을.


그래도 관계가 생각보단 힘 들이지 않고 지나간 것이 다행이기도 하다. 또 경험이고 배우는 기회가 된 것이니. 자책 없이 배우고 나아가야지. 경험으로 배우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영역인 것 같다.


점점 ‘적당히’ 거리 있는 관계를 지향하게 되는 것 같다. 많지 않지만 확실한 사람들을 만나고 편안한 옷만 입는 사람이 되어간다. 새로운 사람에게도 열려있지만 내 선택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각자도생하다가 뜻이 맞으면 만나는 ‘적당한’관계. 이게 필연적인 어른의 관계일까. 어쨌든 각자의 삶이라는 게 있으니 결국 사람도 누굴 만날 지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는 시기가 한 차례 오는 걸지도.


누구는 그런다. ‘거리’도 거리 둬야하는 사람한테나 그래야한다고. 좋은 사람들은 괜찮다고. 나도 그렇게 지향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그 어떠한 사람도 타인이기에 부부사이라도 선을 지켜야하는 것처럼 선을 지키며 잘 지내는 것이 관계의 지혜같다.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고 싶은 인간이 지켜야 할 숙명같기도.


그러니 나에게 투쟁-혹은-도피 모드를 부추기는 사람만 아니라면 나도 선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자고 다짐해본다. 또 혹시 어떤 좋은 인연이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조심스럽지만 항상 다가가는 마음으로 또 오래 두고 볼 마음으로 그렇게 인연을 마주하고 싶다. 한번 보고 판단하기보단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고 또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울지도 모르니.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길 바라듯 나도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오늘도 너그럽게 바라보자.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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