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로 시작해볼까요.
첫 발행 글이니만큼 저의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어릴 적부터 말하고, 쓰는 일엔 늘 자신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 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사랑하고, 이별하며 말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글을 쓰고자 다짐한 순간, 용기를 내기로 주먹을 불끈 쥐던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졌습니다.
작가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던 때를 기억합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또 읽던 그 시절, 잠시 소설가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그 꿈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고통스럽고, 때론 비참한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 같은 비겁자는 작가가 될 자격이 없다고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며 친구들이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갈 동안 저는 잡지사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라도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을 코앞에 두고 부당함에 숨이 막혀 매일 아침 눈 뜨는 것이 두려웠을 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해 볼 용기가, 고통스럽고 때론 비참한 현실을 힘겹더라도 마주해 볼 용기가 봄날의 여린 새싹같이 피어올랐습니다. 몇 개월만 참으면 졸업인 것을, 네가 가능성이 없었다면 그러지도 않았다 부당했던 담임교수가 말렸고, 너 많이 참았다, 그런데 조금만 더 참아보자 동기들이 말렸고, 그 교수가 너랑 맞지 않았을 뿐이다 나도 그이가 별로더라 나는 너를 믿는다 다른 교수들이 말렸을 때에도 여린 새싹 같은 그것이 제 가슴을 계속 간질였습니다. 자퇴서를 내려다 휴학계를 낸 것은 최후의 보루를 남겨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단 한 순간도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적 없었으면서, 그 학교에 내 자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휴학계를 낸 것은 어쩌면 여전히 비겁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를 잡았던 부당했던 교수는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는 어차피 다시 돌아와도 안돼. 그냥 자퇴서를 내지 무슨 휴학계니.
휴학을 하고 무작정 가장 가까운 공모전에 응모했습니다. 한 달 남짓 남은 공모기간 동안 소설은 쓰지 못할 것 같아 수필부문에 응모했습니다. 공모에 당선되셨습니다. 글이 참 좋네요. 그 순간의 떨림. 온몸에 흐르던 전율을 기억합니다. 워낙 작은 계간지인 터라 당선자에게 고료를 주기는커녕 잡지를 몇십만 원어치 사야 한다기에 당선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이미 제 가슴에 솟아오른 여린 새싹은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았습니다. 당선자에게 잡지를 팔아서라도 유지해야 하는 계간지에서 얼마나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나 외의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썩 괜찮은 글이라고 알아주었다는 안도감.
제대로 소설가의 꿈을 키워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쥐었는데, 그 순간 글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지더란 말입니다.
물론 저는 아직 소설가가 되지 못했습니다. 은근히 복학을 바라시는 어머니께 공모에 당선되면 복학하지 않고 글을 쓰겠다 엄포를 놓았으니 당당히 복학은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 최종학력은 고졸이 되었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간간히 책을 읽고, 블로그를 끄적거리고, 공모전 소식을 뒤지며 저는 오늘도 아무것도 아닌 채로, 그럼에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채로 그렇게 백지처럼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는 제가 한없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일 테지요.
그렇게 나 자신조차도 내가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인가 자문하던 순간, 저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또한 어떠한 기준으로 누구를 붙이고, 떨어트리는지 알 수 없으나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감사할 따름입니다.
시들어가던 제 가슴속 여린 새싹에 단비가 되어 내려주었으니까요.
브런치 작가가 되고 메거진을 만들자마자 구독자가 1이 되어 눌러봤더니 첫 번째 구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더군요. 그토록 소소한 자위. 어쩌면 합리화.
어쩌면 구질구질할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언제나 찬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에세이를 연재하는 것으로 브런치를 시작합니다.
지루하고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