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할 때 쓴다. 힘들 때 쓰고, 우울할 때 쓴다. 그래서인지 내 글은 죄다 구구절절 하소연 같다. 멋지고 그럴싸한 글을 쓰고 싶지만 글만 쓰면 한없이 찌질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뭔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퇴사 후 5개월 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불안에 떨고 있던 것만은 아니라고. 실속 없는 제자리걸음 같아 보일지라도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신혼 초부터 남편과 종종 사업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 둘이 힘을 합쳐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둘 다 옷을 전공해서인지 늘 1순위로 등장하는 아이템은 패션 쪽이었지만, 오히려 그 업계에 오래 몸 담고 있었기 때문에 1순위로 탈락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겁 없이 도전하기엔 시장성의 한계와 업계의 민낯을 너무 잘 알았던 탓이다.
어느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 디자인 스튜디오였다. 나는 컨셉 잡고 스토리 만드는 일을 좋아하고, 남편은 그래픽 디자인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럼 우린 스토리가 있는 그래픽을 팔면 되겠네!
언제나 말은 쉽고, 계획은 설렌다. 실천이 어려울 뿐. 입으로만 떠들면서 막연한 계획을 빌드업한다는 건, 하면 할수록 확신이 사라지는 행위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를 맛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우리를 잠식할 즈음 내가 퇴사를 한 것이다.
가진 건 시간뿐인 사람이 되었으니 하면 한다 정신으로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시작하며 가장 먼저 다짐했던 것은 생각은 적게, 행동은 많이. 인간이 아무리 생각하는 동물이라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일을 망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만들고, 맘에 들면 만들고, 오늘 배운 걸 복습하며 만들었다. 컨셉이니 스토리니 브랜딩이니 하는 것들은 일단 차치하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렸다.
그래픽 디자인을 활용해 무자본으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디지털 문구를 만들기로 했다. 일주일에 최소 하나씩 올렸고, 벌써 상품이 스무 개 넘게 쌓였다. 세 달 정도 하다 보니 이제는 생각을 조금 해야 될 것 같다.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컨셉도 잡고 스토리도 만들어서 일정한 방향성을 따라 지속적으로 끌고 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제대로 해놓은 것조차 없는 주제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가진 것들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시장이라 뛰어들었지만, 디지털 문구 시장은 지금도 커지고 있고 앞으로 더 커질 것 같다. 물론 나는 내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만드는 게 더 좋지만, 일단은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봐야겠다. 정말 시작이 반이라면, 이미 반은 온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