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티빙에서 새로운 오리지널 드라마를 공개했다. 박해준 배우를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좋은 역할로 나온다는 것이 반가워 일단 보기로 했다. 근데 나 왜 공감하고 있지?
저를 어떻게 보시는지 압니다. 한심한 백수라고 생각하시죠.
저는 백수가 아니라 자아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퇴사를 하고 행복과 불안 사이를 격렬하게 오가다 보니 어느새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무직으로 6개월을 버텨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 성적으로, 대학교를 가면 학교 이름으로, 취직을 하면 회사 명함으로,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학교 성적과 대학교의 이름과 그의 회사 명함으로 나를 증명하는 삶이 왜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걸까. 그 사이에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왜 의아해하지 않는 걸까. 정신없이 살다 정신 차리고 보니 무직의 30대가 되었다. 나를 증명할 수단을 잃어버리고 나니 비로소 내가 보였다. 그래서 나는 누구지?
정말이다. 퇴사를 하고 나는 자아를 찾고 있는 중이다. 시간은 많아졌고, 돈은 적어졌다. 혼자 고요하게 있는 순간이 늘어났다. 나는 평생 스스로를 단단한 사람이라고, 나를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으나 그래서 네가 뭔데? 물으면 명백하게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나를 설명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쉬웠던 10대를 지나 내가 누구인지 도대체 모르겠던 혼란스러운 20대를 지나 지금의 30대가 되기까지, 아주 조금씩 그러나 착실하고 꾸준하게 나를 잃어갔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나를 되찾아와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될 수 있는 것에 더 심취했던 10대의 나를 찾아 지금 여기로 데려와야겠다.
"너는 지금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해도 될 수 있는 나이야. 그런데 왜 사람이 그렇게 야망이 없니?"
철없던 시절 첫사랑에게 했던 말을 나는 20대 내내 후회했었다. 크고 순한 눈망울이 일렁이던 순간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도 똑같은 말을 할 것만 같다. 너는 지금도 여전히 뭐든 될 수 있는 나이야. 왜 사람이 그렇게 야망이 없니? 경멸의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보겠지. 지가 내가 되는 줄도 모르고,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나를 빤히 바라보겠지. 언제나 그 순간의 나를 지우고 싶었는데, 지금은 당당함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그때의 내가 조금 그리워진다.
자아를 찾고 나면 왠지 모든 것이 잘 풀릴 것만 같은 근거 없는 희망에 휩싸여,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