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소년은 하늘에서 무지개를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반해 무지개를 갖고 싶어졌습니다.
마당에 뒹굴고 있는 잠자리채를 집어 들고 소년은 집을 나섰습니다.
잠자리채를 하늘 높이 치켜들며 소년을 달렸습니다.
들판을 지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소년은 계속 달렸습니다.
결국 바다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무지개와의 거리는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소년은 지체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몸에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소년은 헤엄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지개는 여전히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으나, 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무지개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소년은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잠자리채를 바닥에 끌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내 안에 살아 숨 쉬며 나와 함께 성장했다. 빛의 굴절을 이해하지 못한 멍청한 소년의 우스운 이야기로, 잡을 수 없는 것을 갈망하다 결국 좌절하고 마는 씁쓸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포기를 모르고 끝없이 도전하는 용감한 투사의 이야기로, 이야기는 내 안에서 다양하게 변화하였으나 그럼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것이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정말 실패에 대한 이야기인 걸까?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다가는 거지 꼴을 못 면한다는 교훈을 불쌍하고 어리석은 소년을 앞세워 가르치고 싶은 어른들의 깊은 뜻이었을까? 지금은 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남들에게 더이상 나를 소개할 수 없게 되었다. 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두려워졌다. 불안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이러구러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를 찾아야겠다고 느낀 날, 그날도 나는 무지개를 찾아 떠난 소년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가 무지개를 잡겠다고 집을 나서려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잠자리채를 끌며 집으로 돌아간 소년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봤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밥도 마다한 채, 제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소년은 좌절감에 휩싸여 결국 폐인의 길을 걷다 패배자로 생을 마감했을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적 허용이 가능하다면,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이렇게 쓰고 싶다.
산 넘고 물 건너 무지개를 쫓아 달리던 소년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을 이끌고 길가의 돌들을 의미 없이 걷어차며 집으로 돌아간다. 걷고 또 걷다 무심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소년은 손 끝에 뭔가 걸리는 것을 느낀다. 쉽게 잡히지 않는 그것을 힘겹게 잡아 뺀 뒤 앙다문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펼쳤을 때, 소년의 손바닥 위에는 영롱한 일곱 빛깔 무지개가 빛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무지개를 잡고 싶었던 소년은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을 부린 것도, 허상에 눈이 팔려 이성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이미 갖고 있었으나 가졌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길을 헤맸던 것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지개를 잡으려 그토록 안간힘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 소년은 영영 자신이 무지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이 이야기는 실패의 이야기도, 좌절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필연적인 여정을 걸어야만 했던 소년의 성장통이 담긴 이야기인 것이다.
나를 찾는 일은 무지개를 잡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길을 나서 보려 한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더이상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양손을 치켜들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바다에 이르기까지.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그것을 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