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첫 실패는 진부하게도 사랑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들

by 감우

ㅣ첫 이별을 겪은 후, 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첫사랑, 첫 이별은 10대의 끝자락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가장 문학적인 시절을 꼽으라면 그날들을 떠올린다. 사랑의 과정은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이별의 과정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듣고서도 쉽사리 믿지 못할 만큼 음습한 질척거림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나의 첫사랑이라 불리는 소년은 왜소한 체구에 조막만한 얼굴, 오똑한 콧날과 순하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는데, 남자보다는 확실히 소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자연광에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피부를 한 그 아이는 축구와 야구에 열광하며 시도 때도 없이 운동장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시작은 그의 열렬한 구애에서 비롯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내가 지금껏 만난 모든 남자를 통틀어 가장 인물이 준수했는데,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에게 넘어가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일 년쯤 나의 남자 친구였다가, 이내 남이 되었다. 이별을 먼저 말한 것은 나였는데, 그 말을 꺼낸 것을 후회하느라 그토록 오랜 세월을 허비할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우리의 이별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이 진행되었다. 나는 그의 다정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고, 그는 별도 달도 따 줄 것 같았던 초심을 조금씩 잃어가는 중이었다. 입 밖으로 꺼낸 이별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그를 다시 붙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그 아이를 경악시키는 꼴이 되었다.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필패의 서사라지만, 나에게는 유독 처절하고 비참했다.


나는 일 년을 매일 울었다. 밤잠을 설치다 이른 새벽에 눈을 뜨는 날들이 이어졌고, 눈을 뜨는 순간 수도꼭지가 열리듯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 겪어보는 기이한 현상에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날의 연속이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수시로 쏟아지는 눈물을 몰래 숨어 소리 없이 훔쳐냈다. 한동안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울며 보냈는데, 온 진이 빠진 채로 침대에 누워 이대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적도 있다. 그 시절에는 늘 울음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있어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일조차 버거웠다.


2년째가 되니 점차 울음이 그치기 시작했다. 첫 이별은 사람이 일순간 변할 수도 있다는 것(사실 일순간에 변한 것은 아닐 테지만)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첫 번째 경험이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와 헤어진 후 5년이 지날 때까지 그의 꿈을 꿨다. 다른 남자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그는 끈덕지게 나의 꿈으로 찾아왔다. 그가 꿈에 나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가 그리워졌다. 헤어진 지 5년쯤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그를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니? 아까는 반가웠어."

그 사이 연락의 방식은 문자의 시대에서 카톡의 시대로 넘어와 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전송을 누른 후 1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의외로 답은 금세 돌아왔는데, 의미 없는 근황을 몇 마디 주고받다 내가 다시 용기를 내었다. 한 번 만나 술이나 한 잔, 아니 커피라도 한 잔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며,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가 다시 '우리'가 되는 상상을 했다. 그는 가차 없이 거절했다. 내가 그와 진짜 헤어진 날은 바로 그날이다. 그때서야, 그와의 이별을 똑바로 인정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울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는 더이상 내 꿈에 찾아오지 않았다. 헤어진 지 5년이 지난 뒤에서야 비로소, 첫사랑에 대한 집착적인 미련과 병적인 그리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랑, 특별할 것 없는 이별에도 그토록 오랜 시간 몸살을 앓았던 것은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련의 늪 때문이었다. 그와의 이별로 인해 내 인생은 그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모든 순간에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 내가 더 사랑하는 쪽을 자처한다. 사랑을 아끼지 않기로 매일 다짐한다. 관계에 있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받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 늘 경계한다. 그래서인지, 이후로도 여러 번의 이별을 경험했으나, 이별 뒤에 우는 날은 거의 없었다. 내 생에 사랑 때문에 흘려야 할 눈물을 첫 이별에 전부 소진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미련을 남긴 이별은 첫 이별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첫 이별의 경험을 통해 인간은 대체로 실패를 겪은 뒤에야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확실히 그와 헤어지기 전보다 헤어진 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실패 이후의 태도다. 그 후에도 나는 사랑뿐 아니라 각종 방면에서 숱한 실패를 반복했으나, 후회보다는 진보를 택하는 일이 조금 더 쉬워졌다.


성공의 경험은 나에게 확신이라는 달콤한 선물을 선사하지만, 실패의 경험은 나를 살뜰히 돌아보고 살피게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성장이 실패에서 비롯된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표현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말이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는 바다. 내가 실패를 대하는 시선이나 태도 또한 전부 첫 이별을 겪은 후 정립되었다. 나는 결코 첫 실패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돌아가고 싶은 일말의 미련도 이제는 없다. 가장 괜찮은 나는 언제나 오늘의 나다. 그러니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내일의 내가 부디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를. 과거의 실패를 발판 삼아 반 보 전진하는 내일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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