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생에 첫 모험, 과연 실패였을까?

호주 워홀 실패기

by 감우

이미지 출처 : unsplash

캐리어 네 개를 꽉꽉 채워 호주로 떠난 지 3개월 만에,

기어이 이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말았다.

"우리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자."


나는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 통제욕이 강해 계획이 틀어지는 일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즉흥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어떠한 일을 시작할 때면 머릿속에서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 후에야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니 나의 호주행은 내생에 첫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호주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 친구가 나만 믿고 오라며 나를 흔들었고, 남편은 마침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호주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어 가기로 했다. 그뿐이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서둘러 무언가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우리의 호주행은 명백한 도피였다.


호주에서의 첫 한 달은 마냥 즐거운 여행자로 멜버른과 도클랜드 일대를 쏘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흘려보냈다. 친구가 셰어 하던 집의 방 하나를 얻어 들어갔는데, 쾌적한 환경이었지만 그만큼 집세가 비쌌다. 둘째 달부터는 일을 구해야만 했다. 나는 중식당의 서버로, 남편은 호텔 청소부로 일을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고생하다 금세 적응한 나와 달리, 남편은 며칠 간격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그즈음에 우리는 한국에서 하지 못한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도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했던 터라 액세서리를 만들어 벼룩시장에 내다 팔기로 했다. 약 한 달간, 매주 일요일에 우리는 캠버웰 선데이 마켓으로 나갔다. 캐리어에 안 입는 옷, 우리가 만든 액세서리, 한국에서 가져온 잡다한 물건들을 가득 담아서. 새벽녘에 집을 나서 테이블을 대충 세팅해 두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때의 호주는 한국 패션이 꽤나 인기였으므로, 대박이 날 수도 있다는 단꿈을 꾸며 액세서리 부자재도 왕창 샀더랬다. 애석하게도 투자금을 회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실패 요인은 마켓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있었다. 벼룩시장인 만큼 중고 물품을 저렴하게 처분할 목적이라면 괜찮은 시장이었지만, 수공예품을 가치 있게 대해 주는 시장은 아니었다. 우리 사이트는 참가할 때마다 사람이 바글바글 반응이 꽤 뜨거웠는데, 좀처럼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가 선데이 마켓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었던 날은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고 참가한 마지막 마켓이었다. 짐을 줄이자는 생각으로 가져갔던 옷가지들이며, 지금껏 만들었던 액세서리들을 전부 싸들고 갔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안 되던 영어가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골라, 골라, 세 개 사면 하나 더 드려요. 얼마까지 보고 오셨어요, 깎아드릴게요. 일단 한 번 껴 보세요, 거울 한 번 보실래요? 당신 참 아름답군요.'

호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까지 졸업한 친구가 나의 흥정 실력을 보고 놀랄 정도였으니 이만하면 장사에 꽤 소질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날 못해도 30만 원 정도는 벌었던 것 같은데, 동전으로 꽉 찬 가방을 움켜쥐고 집에 돌아와 고기 파티를 벌이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한국에 돌아온 결정적인 이유는 따지고 보면 돈이었는데, 내가 혼자 일해서는 더 이상 집세를 내기도 버거워졌고, 남편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가던 어느 날, 도클랜드 항구를 걸으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자."


한국 집을 정리하며 이것만은 지켜서 돌아와야 한다고 다짐했던 집 보증금까지 까먹고, 도망치듯 떠나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저 말을 내뱉던 순간 왠지 모를 희망과 용기가 생긴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이상한 일이다. 디자인은 꼴도 보기 싫다고 미련 없이 사직서를 던졌던 남편은 다시 본인의 직업을 사랑하게 되었고, 대학 졸업장도 없이 취업은 꿈도 못 꿀 거라고 지레 포기했던 나는 나 하나 받아 줄 회사가 없겠냐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우리는 아마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우리의 한 챕터가 호주에서 끝난 거야. 이제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


호주에서 돌아온 후 우리는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는데, 그 시간들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집을 구한 지 약 2주 만에 둘 다 직장인이 되었다. 남편은 다시 디자이너가 되었고, 취업은 꿈도 못 꿀 거라 생각했던 나는 꽤 이름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사람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끔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호주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알량한 재산을 그때 다 날려 먹지 않았더라면,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내 도리질을 친다. 역시 호주에 가길 잘했다고.


현지인들로 바글대던 벼룩시장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다가오는 손님들을 기꺼이 맞이했던 일요일, 친구 커플과 매일 엠티라도 온 것처럼 먹고 마시고 놀던 날들, 밤마다 옷을 껴입고 거리를 헤매며 포켓몬을 잡고, 도클랜드 항구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부부싸움을 하던 밤까지, 호주에서의 모든 날들이 소중한 추억이다. 아마 우리가 다시 짐을 싸서 무작정 해외로 나갈 일은 이제 없겠지만, 남들은 돈 벌어 돌아온다던 워홀에서 가진 돈만 날리고 돌아왔던 그 실패 덕분에, 그 실패가 감사하게도 전화위복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내가 조금은 더 용감해졌다고 느끼니까.


또다시 새로운 모험을 준비하는 지금, 이 모험도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두렵다. 그러나 혹 실패하더라도,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내일이 오기 전까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실패뿐인 실패는 없는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해 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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